경희대학교 전산과 교수 정태충
한글 혹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정부 수립 이래 여러번 개정돼 왔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동안의 연구 및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관광부 및 국어연구원은 올해 새로운 개정 시안을 마련했으며 지난 4일 「새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발표했다.
새 표기법의 특징으로는 첫째, 이전 표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초성인 「ㄱ, ㄷ, ㅂ, ㅈ」에 「g, d, b, j」를 배정하고 「ㅋ, ㅌ, ㅍ, ㅊ」에 「k, t, p, ch」를 배정한다는 것이다. 둘째, 모음의 「ㅡ, ㅓ」 에 「eu, eo」를 배정한 것도 큰 특징이다. 셋째, 발음상 혼동의 우려가 있을 때에는 음절 사이에 붙임표(-) 대신 어깻점(’)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기존 표기법을 유지했다. 정보시대에 자판에 없는 短音기호(breve) 표시를 없앤 것도 특징이다.
결국 새 표기법은 한국인의 언어 감각을 중요시하고 정보시대를 고려한 개정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새 표기법을 만든 문화관광부와 국어연구원의 취지에 동감한다. 그러나 앞으로 오랫동안 쓰여야 할 표기법으로서는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로마자 표기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마자 표기법을 만드는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철학 없이 이뤄지는 개정은 단순한 개정일 뿐 개선이 아니며, 때로는 개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철학은 △한국인을 위해 만들어야 하며 △정보시대를 맞아 그 표기법이 효율적이어야 하고 △한글의 창제 원리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복원성을 중요시해야 하고 교육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며, 인식을 빨리 할 수 있는 표기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시대에서 요구하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표기법은 결정적인 것 하나를 빠뜨리고 있다. 필자는 한글의 매우 중요하고도 큰 특징으로 음절 형식을 꼽고 있다. 문자가 단순히 1차원적으로 모여 단어가 되는 로마자 계열의 문자와는 달리, 한글은 문자가 모여 음절을 만들고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된다. 음절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한글의 큰 특징이다.
따라서 영어식 표기형식이 아닌 한글식 음절위주의 표기형식이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해결의 첫 단추라고 본다. 음절위주의 표기형식이란 한글 각 음절의 첫 자에 해당되는 로마자를 대문자로 표시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표기해 보자. 개정 표기법에 따르면 「Geumdongmireukbosalbangasang」이라고 쓰여진다. 이를 인식하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음절 위주로 표기하면 「GeumDongMiReukBoSalBanGaSang」이 된다. 훨씬 빨리 읽을 수 있다.
필자의 연구 결과 음절위주 표기형식을 사용할 경우 인식 속도가 40% 향상되며 인식 오류도 40% 감소한다.
또한 음절위주의 표기형식은 로마자가 한글에서 온 것이라는 정보를 나타내 줌으로써 한글식으로 읽게 해 준다. 따라서 「eo, eu, g」를 「에오, 에우, ㅈ」으로 읽지 않고 「어, 으, ㄱ」으로 읽을 수 있게 해주므로 「GeoBukSeon」을 「지오북세온」이 아닌 「거북선」으로 읽게 해 준다.
문화관광부는 여러 장점이 있음에도 음절위주 표기형식이 외국인에게는 생소하며 일부 한국인에게도 거부감이 있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사려된다.
새로운 표기법이 마련돼 시행되는 마당에 또 다른 개정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로마자 표기가 국어의 세계화와 정보화에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쉽고 빠진 점을 지적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개선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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