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아전인수

『기술력도 없는 기업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벤처캐피털). 『제대로 된 심사능력도 없으면서 분위기에 편승, 거저 먹으려 들어요』(벤처기업).

요즘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들의 투자관행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비난이다. 코스닥시장 침체로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거품이 걷히는 과도기를 맞으면서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업체들이 현 상황을 서로 자기쪽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대덕연구단지의 간담회에 참석한 벤처기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제대로 된 심사능력을 갖춘 벤처캐피털이 없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투자조건과 맞지 않아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투자가 급한 기업들의 경우 울며겨자먹기식의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했다.

불만이 많기는 벤처캐피털들도 마찬가지다. 코스닥시장의 장기적인 침체로 벤처기업들의 버블이 꺼질 만도 한데 아직도 벤처기업들은 잘나가던 호시절(?)만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는 것. 『5년 혹은 10년후 그 기업의 가치가 액면가의 20배가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는데 벤처기업들은 이런 변수들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투자협상이 결렬될 수밖에요』(모 은행 벤처투자팀 관계자).

양측의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일부 벤처캐피털의 경우 코스닥 붕괴를 계기로 벤처기업들에 으름장을 놓고 있고 벤처기업들은 자신들의 현재 기업가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이미 코스닥에 등록돼 자리를 잡고 있는 기업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편한 대로 현 상황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들어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상호간 불신이 점점 커지면서 벤처문화를 좀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윈윈」하는 불가분의 관계이자 동반자다. 기술력은 있으나 자본력이 달리는 벤처기업은 벤처캐피털을 통한 투자유치로 기업가치를 키워가고 벤처캐피털은 투자한 벤처기업의 가치제고를 통해 캐피털게인을 거둔다. 따라서 상호간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더욱 그렇다. 서로에게 책임만을 전가하면 둘다 이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경제부·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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