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준비···

박주용 논설위원 jypark@etnews.co.kr

PCS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던 97년도의 일이다. 디지털 휴대전화 시대가 시작된 이후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S전자는 생산에 비해 PCS 수요가 워낙 밀려들어 초기 물량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해당품목 마케팅 담당자의 경우 2∼3년은 수요부담이 없어 걱정도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마케팅 담당자는 의외의 고민을 토로했다. 포스트 PCS 제품으로 무엇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담당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해당 부서 전체가 풀고자 하는 숙제 가운데 하나였다. 변화에 대비한 이같은 고민들은 S사가 지금도 국내 휴대전화시장의 강자일 뿐 아니라 당분간 최강자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세계 무선 휴대단말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모토로라는 초기에 카오디오 업체였다. 양방향 라디오에 기반을 둔 워키토키로 무선통신부문에 진출하고 달 탐사에 사용됐던 무선통신장비도 개발했지만 70년대 초까지 이 회사는 TV를 비롯한 AV업체로 일반에게는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74년 TV부문을 일본 마쓰시타에 매각하면서 사실상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가전사업에서 손을 뗐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무선통신부문에 주력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이 회사는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 지금의 기틀을 잡았다.

최근 들어 벤처기업 거품론이 확산되면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따라 코스닥시장도 연일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증시의 폭락은 미국 증시침체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100선까지 위협받을 것으로 보이는 코스닥시장 상황은 벤처거품론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품이라는 것은 과대평가를 의미한다. 이는 내재가치에 대한 불신이며 결국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부 코스닥 상장업체를 포함한 다수의 벤처기업을 보는 투자자들의 눈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터넷사업이나 첨단 기술분야에 나서는 벤처기업에 엄청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일부 코스닥 상장업체의 경우 주식가치만 평가할 때 굴지의 대기업의 주식가치를 넘어설 만큼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기도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존의 틀을 벗어난 사업방식은 각광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지금 이들 업체 가운데 상당수는 평가절하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평가절하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의 요인은 변화나 변신의 부재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콘텐츠나 이를 이용한 서비스업체인 온라인업체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넉넉한 자금으로도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기업가치가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업아이템으로 신뢰를 얻어 인정받는 것은 장인정신이 요구되는 일부 오프라인 업체에는 아직도 유효하다. 문제는 온라인업체들이 한가지 아이템이나 기술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낙오될 수밖에 없어 새로운 투자를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선의의 기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콘텐츠나 기술개발보다 주가관리에만 신경을 쓰는 기업들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중에는 아직도 상당수의 자금이 투자처를 찾고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눈에 보이는 현재의 기술이나 사업내용만 가지고 이들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이미 확보한 자금을 업그레이드된 콘텐츠 개발이나 서비스 개발에 재투자하는 데 소극적인 업체들도 새로운 자금유치가 어렵게 될 것이다.

기업, 특히 벤처기업의 가치는 현재에 있지 않다. 자기개발에 소홀한 업체는 벤처기업의 자격이 없다. 자기개발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자금의 재투자와 그로 인한 결과물이 만들어질 때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기업가치는 그만큼 올라갈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를 탄탄히 하는 벤처기업이 많아질수록 벤처기업의 거품론도 사라지고 국가경제도 튼튼해질 수 있다는 것을 벤처기업인 모두가 깊이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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