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티컬 매스와 자본 의지

서현진 논설위원 jsuh@etnews.co.kr

인터넷 비즈니스가 종국에는 굴뚝산업시대의 자본가들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는 말이다.

네트워크 효과를 규칙화한 것이 「메트컬프의 법칙」이다. 네트워크의 규모가 확장될 때마다 그 비용은 직선적으로 증가하지만 가치는 기하급수로 제고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 법칙은 전화·팩스 등 일반 통신망 외에도 전력·가스(송유관)·철도 네트워크 등과 심지어 소프트웨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컨대 팩스는 최소한 두대가 있을 때만 문서를 주고 받는 고유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기계다. 두대의 팩스, A와 B에 새롭게 C를 추가 연결했을 경우 네트워크 효과를 따져 보자. 우선 팩스 구입비용은 두대에서 세대가 됐으므로 정확하게 50% 증가했다. 반면 그 가치는 A대B만의 송수신에서 A대C 및 C대B라는 경우의 수가 발생했으므로 3배로 증가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다시 팩스 D가 추가됐을 때는 비용은 33%, 가치는 6배로 늘어나게 된다.

「아래아한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정품이든 불법복제품이든 아래아한글로 작성된 문서의 유통이 많을수록(사용자가 많을수록) 업계표준으로서 아래아한글의 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급사는 큰 추가 비용부담 없이 지속적으로 아래아한글의 판매를 확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모든 네트워크 효과는 일정한 규모의 비용투자가 선행돼야만 나타나게 돼 있다. 아래아한글의 경우는 불법복제 범람에 의한 손실이 투자비용에 해당된다. 통신망과 전력배선망에서는 일정 규모의 케이블 매설이나 전신주의 설치 등이 요구된다. 이 일정 규모의 선행투자 개념을 가리키는 용어가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다.

크리티컬 매스는 수확체증의 법칙에서 수요와 공급선이 만나는 곳에서 결정된다. 이 법칙에서 크리티컬 매스에 도달할 때까지는 공급(선행투자)이 수요(네트워크 효과)를 초과하다가 이후에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공급을 초과하게 된다. 바로 메트컬프의 법칙이 실증되는 상황인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기대되는 분야가 인터넷 비즈니스다. 그러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앞으로 인터넷 비즈니스는 초기의 열풍(carnivalization) 단계를 지나 핵심역량에 기반한 수익 모델과 과감한 초기 마케팅 비용, 그리고 기존 오프라인과의 균형적 연계 등 크리티컬 매스를 결정짓는 조건들이 성공 여부를 가름한다고 한다. 여기에 인터넷만의 특성인 정보불량·배송위약·개인정보보호위반 등 모럴 해저드와 상황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줄 아는 위기관리 능력도 요구된다.

「캐즘 뛰어넘기」의 저자 조프리 무어는 크리티컬 매스에 대해 대단절(chasm)이론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신기술이 시장에 수용되는 주기를 초기시장·주류시장·말기시장 등 3단계로 나눠볼 때 초기에서 주류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대단절이다. 무어에 따르면 아이디어와 패기로 도전한 대다수 벤처기업들은 이 대단절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돌아오지 않는 계곡으로 추락(도산)하고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크리티컬 매스나 대단절은 예나 지금이나 엄연히 존재해온 현실적 문제다. 국내에서는 다만 IMF 직후 벤처창업 또는 인터넷 열풍에 가려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더욱이 인터넷 분야에 다소의 냉기가 감지되고 있는 요즘 크리티컬 매스를 통과하는 극소수의 기업은 이미 가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굴뚝산업시대 자본가들의 이른바 「자본 의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게 확실하다. 크리티컬 매스를 극복해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자본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망은 인터넷이 부익부 빈익빈(winners take all) 또는 선발주자의 이점(first mover advantage) 등의 규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자본가들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는 주장은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흐름이다. 뭔가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현실인식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순간인 것이다. 이런 충격은 초창기 인터넷 비즈니스를 벤처형 비즈니스로 판단했던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에 대한 결과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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