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론 사장 하태민
우리나라 주식인구비율은 세계적이다. 더구나 사이버거래 금액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워낙 통신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탓에 객장에 나가지 않고도 집에서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가정주부들까지 날로 늘어만 간다.
남편이 사무실에서 주가를 살핀다면 부인은 집에서 아예 주가를 연구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점심식사때에도 사람들은 주식 얘기고 직장 동료들과 잠시 담배를 피우면서도 주식 얘기다. 주식을 모르면 요즘에는 대화를 하다가도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사이버트레이딩」이니 「정보통신」이니 하는 용어들이 주부들 사이에서도 보편화됐다.
몇일 전에는 미국 나스닥지수의 폭락으로 국내에서도 「블랙 먼데이」라는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미국 나스닥시장의 폭락이 「그들만의 우울함」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시장에서 「피의 금요일(Bloody Friday)」이라는 소식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이 될 것이란 공포감으로 인해 좌불안석이 되는 것이다.
지난 17일은 우려했던 대로 「사상 최악의 증시폭락」 사태를 만들어냈다. 거래소시장은 장중 한때 100포인트 가량 빠지면서 주가지수 700선을 위협받기도 했으며 코스닥시장은 170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대폭락으로 마감된 후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 같은 표정들이 서려 있었다.
「왜 미국보다 우리 주식시장이 더 폭락할까.」
미국 증시는 금리인상 우려감이나 그 동안의 과도한 상승으로 폭락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증시는 왜 그네들의 기침에도 독감을 앓아야 하는가 말이다. 그 동안 우리는 미국시장, 특히 나스닥시장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지내왔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의 문제에 소홀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마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주변을 살펴볼 시간이 된 것 같다. 조금만 더 국내 경제에 관심을 쏟다보면 우리증시의 하락이 단순히 미국과 연관된 현상만이 아님을 금세 알 수 있다. 현재의 주가 급락의 원인은 무엇보다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귀결된다. 재벌로 대변되는 국가경제,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기업들, 재벌을 닮아가는 벤처기업, IMF 이후 흥청거리는 사회분위기 등 모든 현상들이 곪아터진 결과에 기인한다.
특히 투신권의 미지근한 구조조정 문제는 증권시장에 치명상이다. 이미 곪을 대로 곪은 투신권의 병은 금융권 전체의 병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그 현상으로 나타난 게 나약한 증권시장의 모습이다. 3대 투신의 경우는 특히 지속적으로 수탁고가 감소하고 주식형 수익증권의 환매로 인해 주가 전망과는 무관하게 매도세를 쏟아냈다. 더구나 근근이 지탱해주던 외국인의 왕성한 순매수까지 미국증시의 폭락으로 약화되자 수급의 불균형이 국내 증시에 그대로 밀려들기에 이른 것이다.
정부는 최근의 주가급락을 두고 갖가지 처방을 내놓는다고 부산이다. 그 동안의 시중은행 구조조정 양상을 볼 때 얼마나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을지 의문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접어두고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신권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때다.
이번에도 투신권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수십조를 투입하고도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불행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게 되면 우리나라 증시는 또다시 미국증시의 기침소리에 중병을 앓는 「비극적 종속상황」이 지속될 뿐만 아니라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증시의 자주권 확보를 위해서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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