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중
『이 세상의 여러 문명들이 하나의 지구제국으로 통합되어 가는 지금, 영어를 앵글로색슨족의 언어로 여기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영어는 이제 인류의 표준언어다. 그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이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이기주의가 뿌리다. 자연히, 그것은 늘 「나」를 앞세우고 「나」를 되도록 좁게 규정하려는 속성을 지녔다. 그래서 「남들」의 존재를 상정하고 네트워크 경제에 바탕을 둔 언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으며, 언어 정책에 무척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 그런 해독은 이미 우리의 한문 정책에서 잘 드러났다. 우리 선조들이 한문을 나름대로 향유하면서 다듬어놓은 자신들의 언어로 여겼다는 사실을 잊고서, 한문을 중국인들의 독점적 유산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크게 어리석은 일이었다.<…중략…>
국제어는 그것을 쓰는 모든 사람들의 자산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 의해 다듬어진다. 이제 우리는 영어라는 국제어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선언해야 한다. 우리도 그 국제어를 다듬어 발전시키는 일에서 우리 몫을 하겠노라고.』
메모:영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이들은 영어를 모국어식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현상은 Konglish니 Chinglish니 하며 조롱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지금 아시아에선 그런 영어인구가 3억50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아시아인들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한 호주에서는 아시안 영어사전을 출판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국제어로 영어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함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서현진논설위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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