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의 화두가 디지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올들어 각종 매체광고는 디지털 일색이고 주요 기업의 정보통신 관련 부서명도 「디지털 ××팀」으로 교체했다. 현재 디지털이라는 꼬리표가 달리지 않은 것은 모두 구식 취급을 받을 정도다.
90년대 중반까지 우리 주위에서 디지털을 체감할 수 있는 제품은 고작 PC 정도였으나 현재는 TV·VCR·카메라·캠코더·휴대폰은 물론 이제 냉장고·전자레인지·가스보일러까지 디지털을 지향하고 있다. 소형가전 업계에도 디지털 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새로 개발되는 소형 가전제품들이 디지털 옷으로 단장하고 있다. 디지털 센서를 단 정수기, 충전정도와 전기잔량을 표시하는 센서 부착형 전기면도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소형가전 업계에까지 불고 있는 디지털 바람의 내용을 알고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소형가전제품은 워낙 기능이 간단한데다 이미 보급되기 시작한 지 몇십년이 되다보니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첨단 이미지의 대표격인 디지털 꼬리표를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단순히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사실 믹서는 잘 갈면 되고, 면도기는 수염이 잘 깎이면 그만이고, 드라이어는 잘 말리면 끝이다. 디지털 센서나 칩을 장착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이 쓰는 기능은 핵심기능 한두가지뿐이다. 업체들은 디지털 센서 등을 부착한 신제품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사실 생산단가 등을 고려하면 아날로그 제품에 비해 가격대 이익이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
요즘 인터넷 전화 다이얼패드 덕에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헤드세트도 사실 일반적인 헤드폰에 마이크만 덧붙인 것이다. 머리에 헤드세트를 쓰고 인터넷 전화를 걸고 있는 모습은 최신의 디지털 풍속도로 보이겠지만 헤드세트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장비로 디자인만 새롭게 했을 따름이다. 이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제품으로는 장사가 안될 것이란 생각이 단견임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일 뿐이다.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 제품이면 충분하고 오히려 더 적당한 경우도 있다. 제조업체로서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만 고집할 경우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대부분 편리성과 디자인을 보고 제품을 구입한다는 사실을 소형가전업계는 인식, 성능과 편리성을 고려한 제품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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