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벤츠와 벤처

 「벤츠」와 「벤처」의 발음은 비슷하지만 상징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벤츠」하면 부와 권력을 연상하게 되고 「벤처」하면 도전·기술 등이 언뜻 떠오른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요즘에 서로 뒤섞여 사용되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한 신생 벤처기업의 기술 발표회. 기술 발표회 장소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발표회장 앞에는 그랜저·벤츠 등 고급 승용차가 즐비하게 주차돼 있었다. 빌딩 앞부터 발표회장까지 늘씬한 도우미들이 방문자를 안내해 마치 재벌 그룹의 홍보관을 방불케 했다. 더욱 어리둥절하게 했던 것은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다. 주요 금융기관 임원을 비롯해 언론사 사장,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좌석을 꽉 메우고 있었다. 발표회 사회로 유명 연예인을 동원했으며 발표회 중간 중간에 국회 의원들을 소개해 마치 정견 발표회장을 연상하게 했다.

 결국 이날 발표회는 한 무명 벤처기업이 각고의 노력끝에 개발한 첨단기술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자리인지 아니면 사장의 인맥이나 정치력을 과시하는 자리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 대다수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물론 국회의원이 참석했다거나 연예인이 사회를 본 사실 자체는 큰 흠이 될 수 없다. 좀 더 회사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우려하는 것은 「벤처 마인드」의 실종이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도전과 기술로 승부하는 기업이다. 꾸민 듯한 요란한 겉포장은 분명 벤처기업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 이를 이용해 자본조달이나 주가상승을 꾀한다면 사이비 벤처에 불과하다. 벤처기업이 도전정신이나 도덕성을 잃고 돈벌이에 매달린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이같은 기업이 소위 잘 나가는 벤처기업, 기술력 있는 회사로 평가받는다면 이는 언론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책임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좁은 다락방에서 신기술 개발에 노력하는 숨은 알짜 벤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벤츠」를 몰고 다니는 「벤처」 사장은 아무래도 안어울린다.

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 kang @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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