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19)

 나타샤의 친구 가운데 얼굴이 익은 사람도 있었다. 대학 교정에서 인사를 나눈 일이 있는 나탈리아는 동양적인 외모였다. 머리가 새카맣고 눈동자도 까맣다. 처음 소개받았을 때 그녀가 카자흐공화국 당 서기장의 딸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녀는 아직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자 두 명은 대학원 수강 시간에 만난 일이 있는 원우였다.

 바이올린을 보자 로버트가 가만히 있지 못했다. 나는 여자들에게 그가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여자들은 연주를 듣고 싶다고 하면서 환호했다. 로버트는 약간 으스대는 표정으로 악보를 뒤적거리더니 그의 방에서 들은 일이 있는 베토벤의 소나타 9번을 골랐다. 소나타 9번은 일명 크로이처 소나타라고 불려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베토벤이 그 곡을 만들어서 크로이처에게 선물을 한 것에서 나온 말이었다.

 『베토벤의 소나타 9번인데, 누구 피아노로 협연을 하시겠습니까?』

 로버트가 러시아말로 물었다.

 『우리는 미국 팝송을 좋아하는데.』

 나타샤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나탈리아가 불쑥 나서면서 피아노 협연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어 나탈리아와 로버트가 협연을 하였는데, 두 사람은 마치 호흡이 맞는 것처럼 악보와 얼굴을 서로 보면서 열연을 하였다. 음률이 흘러나가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맞추기도 하면서 여자가 살짝 웃음을 짓자 로버트도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협연이 잘 되고 있다는 서로간의 칭찬이었다. 단 한번의 연습도 없이 시작한 협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포커를 하면서 이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저 두 놈은 계집처럼 여자들과 놀고 있네 하는 듯했다.

 그 한번의 협연으로 나탈리아와 로버트는 친숙해졌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내연의 관계로 발전했다. 로버트의 방에 가면 그의 아내와 한 살 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진 속의 여자를 가리키면서 아내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아내는 영국의 환경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였다. 내가 모스크바를 떠날 무렵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가 나탈리아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소련 여자를 경계하라는 그의 충고가 무색해져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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