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커버스토리.. "분단의 방화벽" 뚫는다

 <장면 하나>

 중소업체 A사가 북한에 세운 컴퓨터용 모니터 인쇄회로기판(PCB) 위탁가공 공장. 남한 기술자와 북한 근로자간에 대화가 오가고 있다.

 『남쪽에서는 기판의 자동삽입 공정에서 어떻게 작업을 합니까.』

 『손에 기름때가 묻으면 안됩니다. 손때가 묻게 되면 솔더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죠. 불편하더라도 꼭 장갑을 껴야 합니다.』

 <장면 둘>

 A사의 서울 본사. 평양에서 조선글 워드프로세서 「창덕」으로 작성한 팩스 문건이 들어오고 있다.

 『자재 검수 결과, 부자재 부족상황 발생. 긴급조치 바람. 경의』

 지난 95년 전자정보통신분야 남북교류가 시작되고 97년부터 평양 대동강 유역에 남한 전자업체들이 둥지를 틀면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업형태는 아직까지는 위탁가공 교역사업이 주류를 이룬다. 아이엠알아이를 비롯해 LG상사·성남전자공업·극동음향·한국단자공업·제일물산 등 15개 업체가 가세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평양에서 매년 30만∼40만대의 컬러TV·라디오카세트·유선전화기 등을 생산키로 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현대아산도 평양시내 인근에 현대전자가 반출하는 연산 1만∼2만대 생산규모의 PC조립 라인을 설치키로 지난 6월 북한과 합의한 바 있다.

 통일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0월말까지의 남북한 전체 교역규모는 2억8768만여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60.7% 늘어나는 등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교역품목에서는 아직 섬유류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PC모니터·컬러TV·TV스피커·전자부품 등 전자분야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올해 10월까지의 전자·전기분야 반입규모는 전체의 5.7%인 250만달러, 반출규모는 4.7%인 180여만달러를 기록중이다.

 통일부 교류협력국의 한 관계자는 『전자분야 대북 위탁가공교역이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남북 모두 위탁가공교역이 이득을 가져다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남북의 기술·생산협력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북한이 값싸고 질좋은 노동력, 언어·문화의 동질성, 지리적 인접성, 세제혜택, 숙련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최적의 임가공 생산기지로 판단하고 있다.

 평양공장에서 북한 근로자에게 기술이전을 해온 아이엠알아이의 한 관계자는 『하드웨어나 응용기술 상품화는 뒤져 있지만 기초기술 수준은 뛰어나다』며 『일정 기간 교육을 실시하면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측 역시 『선진기술이 도입되면 전자분야를 비롯, 낙후된 경공업분야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한기업들의 대북 위탁가공교역을 선호하고 있다』고 대북 교역사업자들이 전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98년 남북 경제교류 관련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남북협력기금의 대출금리를 연 6%로 낮춰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방안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또한 대북 설비반출 승인제도를 폐지하고 반출입 승인을 요하는 품목을 크게 축소해 남북교류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그러나 이제 몇 걸음을 내디딘 남북간 전자정보통신 기술교류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당국간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과도한 물류비, 대북교역에 있어서의 정보부족, 북한내 통신 및 기술지도의 어려움, 품질 불신 등이 모두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에 대해 평양 등을 오가며 대북 교역사업에 직접 나서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은 남북교류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윈윈(Win Win)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에 앞서 남북 당국은 물론 기업가·근로자 사이에 「신뢰」가 굳건하게 뿌리내려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전문가들은 또한 서로에게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품목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북간 전자정보통신 기술협력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 경제공동체 형성과 통일비용 사전분담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하게 된다. 대북교류가 어느 한때의 일과성과 구호성 교류로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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