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진정한 프로 정신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TV 동물프로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가끔 동물원에 가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코끼리·악어·기린·오리 등을 찬찬히 살펴본다. 생긴 모습은 참으로 제각각이다. 덩치로 한몫 보는 놈이 있는가 하면 천둥처럼 위엄있는 목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있다. 빠른 발을 가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강인한 이빨을 가진 동물도 있다. 동물은 프로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주특기를 갖고 있다. 아무리 연약한 오리도 수영에 관한 한 사자인들 따라올 수 없다. 땅파고 기어들어가는 데는 두더지를 넘볼 선수가 없다.

 달력이 한장밖에 남지 않았다. 눈이 내리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게 된다. 99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거창하게는 한 세기가 저무는 것이고, 천년이 무대 뒤편으로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로스앤젤레스 넵콘웨스트 쇼와 그 이후에 이어진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년 반 동안 162억원을 투입하고, 100명 이상의 연구원을 동원, 첨단 메카트로닉스 기술의 꽃, 자동로봇장비 SMD마운터를 세계인들에게 선보일 때의 설레임. 그것은 마치 어린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거장 골리앗과 마주섰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세계적인 거인과 이름도 없는 애송이 기업 미래산업. 구름 같이 몰리는 바이어와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줄을 서는 외국기업인들. 천안공장의 문턱이 닳도록 방문하던 사람들.

 이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래산업으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고 전략적 제휴의 「전」자도 꺼낼 수 없는 거인들 아니었던가. 이들의 기술을 전수하려고 미래산업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때마다 수모와 좌절을 경험했던가.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그들 업체의 내용을 실사하고 전략적 제휴의 대상이 되는지를 심사하는 위치로 반전됐으니, 역전의 바탕에는 임직원의 프로정신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분당 서현역 부근의 연구소에는 침대와 체력단련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다. 새벽까지 연구하다가 이곳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필자는 한번도 이들의 출퇴근을 점검해본 적이 없다. 밤을 새워가며 연구하라고 말을 한 적은 더더구나 없다. 연구활동을 제약하는 어떤 지시도 내려본 적이 없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라는 지시조차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연구에 방해가 될까봐 이곳에 들르는 것마저 자제할 정도니까.

 그럼에도 이들은 몸을 던져 일한다. 로봇장비를 개발할 때는 한달내내 연구소에서 잠을 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진정한 프로다. 프로정신이 없으면 21세기에 살아남기 힘들다. 국경없는 시대가 도래한 지는 이미 오래고 빛과 같은 속도로 정보가 오가고 거래가 이뤄지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분야에서건 최고봉에 올라서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고를 지향하는 풍조는 때로는 현기증 나게 만들고 인간성을 말살시키기도 하지만 대세는 어쩔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내 자신이 어떤 점에서 프로에 근접해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이나 특기를 먼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다윗의 주특기가 물매돌을 던지는 것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물매돌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기술과 경영서비스 면에서 기업경쟁력의 원천은 다양하다.

 GE처럼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나이키처럼 자체 생산시설 없이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능한 것만으로도 정상에 설 수 있다. 스위스 아미나이프를 만드는 업체나 독일의 쌍둥이칼 업체는 바로 규모는 작지만 한우물을 파 그 분야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경쟁력을 구축했다.

 중요한 것은 프로와 일반의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노력하는 모습은 얼핏 보기에 비슷하지만 이들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프로는 한가지 일에 온몸을 던지며 궁극적으로 목숨을 건다는 점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이 계절, 동물원을 찾아 프로로 무장된 그들을 보면서 내 자신과 기업의 21세기 경쟁력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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