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맞은 한국오라클 강병제 사장

 『오라클에서 왔다고 하니까 「오리털이요」 「오락실이요」라고 반문하더군요. 대기업의 대리도 만나기 힘들었고 세미나에 참석하겠다는 전화 한통에 만세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오라클의 강병제 사장(58)이 회고한 10년 전 설립 초창기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씁쓸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웃으며 떠올리는 추억이 됐다. 한국오라클이 오는 10일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국내 소프트웨어(SW)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업을 꼽으라면 아마 한국오라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출 1000억원의 국내 최대 순수 SW 기업. IT업계에서는 한국오라클의 성공에 신화라는 말을 붙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리고 그 신화의 중심에는 10년째 변함없이 사령탑을 맡고 있는 강병제 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외국기업의 지사장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오라클의 강 사장을 벤치마크하고 있다』는 것.

 89년 11월 한국오라클이 처음 「오라클」 영업을 시작할 당시는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이라는 SW가 IBM이나 HP 등 하드웨어 업체들의 기계에 얹혀서 팔리던 시대였다. 호환성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겨우 5명의 직원뿐인 작은 기업에 업체들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오라클은 설립 3년 만에 오라클이라는 이름을 업계에 각인시켰다. 성장은 계속됐고 DBMS 시장을 장악했다. 뭔가 남다른 비결이 있었을 것 같다. 이 질문에 강 사장은 느닷없이 컴퓨터 역사 이야기를 꺼낸다.

 『IBM이 등장하면서 기업 경영이 IBM에 종속됐지요. 관계형 DBMS가 나오면서는 IBM을 포함한 하드웨어 업체들이 모두 DBMS에 지배되는 현상을 가져왔습니다. ERP가 등장하면서 DBMS는 다시 ERP에 종속됐습니다만 이 역시 잠시뿐이었고 이제는 컨설팅이 ERP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배와 정복의 역사적 흐름을 잘 파악한다면 미리 알아서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오라클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매달 어김없이 개최하는 세미나. 출범 첫달부터 시작한 공개 기술세미나는 지금까지 빠짐없이 10년을 계속해 최근 100회를 넘어섰다. 『우선 마케팅을 통해 알리고 그 다음에 품질을 만족시켜라』는 강 사장의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강 사장이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고객서비스. 한국오라클의 영업팀은 영업사원 1명에 지원 엔지니어가 6∼7명이나 된다. 처음부터 이러한 시스템을 고수해왔다. 『국내에서는 생각도 못하던 일을 한국오라클이 증명했다』고 강 사장은 자평한다.

 그가 갖고 있는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도 들어볼 만하다. 『기업의 재산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 중심으로 경영해야 한다. 경영자가 이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하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직원들을 대하는 사장은 단지 싼 임금으로 규격화된 사람만 쓸 뿐 그들의 지식, 창의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승승장구하던 한국오라클도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강 사장은 두말없이 IMF를 꼽았다.

 『IMF 터지고 한달 만에 매출이 70%나 감소하더군요. 처음 2주간 밤잠을 못잤습니다. 뭔가 보이면 노력이라도 하겠는데 아무것도 안보이는 암담한 심정뿐이었습니다.』

 강 사장은 사람들이 왜 점쟁이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업계에서는 한국오라클이 언제 구조조정을 하느냐 이목이 모아졌지만 결국 강 사장은 본사의 지원 약속을 끌어내고 『그냥 가보자』고 결정했다.

 한국오라클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항상 곱지만은 않다. 이른바 『많이 컸다』 『건방지고 고압적』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 대목에서 강 사장은 신중해진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직원들에게 늘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간의 관계이니만큼 준비는 돼 있다. 직원들에게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살라』고 충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강 사장은 이제 한국오라클의 역할론에 대해 언급했다.

 『이제는 한국사회에 기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회사가 기술력을 전수할 만한 위치에 도달한 것이지요.』

 그는 이 사업이 정착되면 2002년 월드컵을 구경하고 은퇴할 생각이란다. 한국오라클은 지난달말 IT업체들이 밀집돼 있는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에 입성했다. 포스코센터 건너편 삼화빌딩 꼭대기에 붉은색 「ORACLE」 간판이 커다랗게 나붙었다. SW 중심지 테헤란로에 외국계 SW 기업의 이름이 걸린 것은 처음이다. 10년 전 한국오라클을 시작할 때 강 사장이 품었던 꿈 하나가 1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 약력

△42년 평북 강계 출생

△60년 경복고등학교 졸업

△67년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70~75년 ITE 임페리얼

△76~84년 루스일렉트로닉

△85~88년 프라임 컴퓨터

△89~현재 한국오라클 대표이사 사장

△96~현재 한국CALS/EC기술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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