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커버스토리.. 빌딩 밀림속 헤드헌터 인재 사냥꾼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졌다. 직장인들은 IMF 이후 대규모 실업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년퇴임의 꿈을 접었다. 기회가 생긴다면 회사를 박차고 나가 더 좋은 조건, 더 좋은 자리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기업들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바깥의 「고수」를 초빙하려 한다. 고급인력 알선업체, 이른바 헤드헌터사들이 최근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헤드헌터사들은 IMF 이전까지만 해도 일감 찾느라 바빴다. 이제는 구인 업체가 알아서 찾아온다. 몇몇 헤드헌터사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헤드헌터사의 주 고객은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이었다. 국내 기업의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이 비중이 올들어 40∼50%로 높아졌다. 대기업은 물론 벤처기업과 공공기관들도 헤드헌터사의 문턱을 넘고 있다.

 고강식 탑경영컨설팅 사장은 『국내 기업들이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관리시스템을 버리고 팀제 또는 성과주의를 채택하는 데 따른 변화』라고 말했다. 공채 중심의 인력 채용이 외부 인재에 문호를 개방하는 채용으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경영인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문경영자들은 오너경영자와 달리 내실을 중시해 조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배치하려 한다. 내부에 없다면 외부에서라도 데려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타고 헤드헌팅 시장은 번창해 올해 3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헤드헌팅 시장의 최근 이슈는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기술(IT) 분야의 인력 확보. IT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는 물론 마케팅 전문가, 재정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헤드헌터 업체들은 『수요(기업)에 비해 공급(해당 인력)이 너무 없어 수배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요즘 IT인력의 주가는 상한가다. IT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을 못받으면 실력없는 사람』이라는 말도 나돈다.

 인력도 적지만 이들을 찾는 IT전문 헤드헌터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IT분야에서 탄탄한 인맥을 가진 컨설턴트가 드문 탓이다. 한 헤드헌터사 사장은 『다른 헤드헌터사에 의뢰해서라도 IT전문 헤드헌터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시장이 커지자 헤드헌터사도 크게 늘어났다. 1, 2년 사이 헤드헌터사가 40여개에서 80여개로 두배 정도 늘어났다. 시장 상황이 호전된데다 까다로웠던 설립 요건도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숫자는 적지 않으나 명실상부한 헤드헌터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

 업계에서는 컨설턴트, 리서처 등 10명 안팎의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제대로 된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헤드헌터사로 본다. 이 기준으로 보면 헤드헌터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헤드헌터사는 대부분 토종업체들이다. 외국자본으로 운영되는 회사는 콘페리인터내셔널, 하이드릭앤스트러글, 아데코, AHR코리아 등에 불과하다. 국내 업체였던 휴먼서치는 올해 아데코로 흡수됐다.

 외국 업체들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고위임원을, 국내 업체들은 임원과 중간관리자급을 주로 알선한다. 이제는 영역 구분이 사라졌으며 IT, 벤처, 금융 등의 분야별로 전문화하는 추세다.

 그동안 헤드헌터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았던 것은 아니다. 멀쩡히 일하는 사람을 꾀어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는 「사람장사꾼」으로 몰리는 일이 많았다. 스카우트에 따른 회사 기밀의 유출 논란도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년퇴직도 보장받지 못하는 마당에 실력에 맞게 대접받아야겠다는 사람들에게 헤드헌터는 고마운 천사일 뿐이다. 기업들도 헤드헌터를 단순히 사람을 알선해주는 중매쟁이가 아니라 인사를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전문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역설적으로 국내 기업의 인사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려있음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최정아 아데코 사장은 『국내 기업의 인사제도는 사람을 뽑는 일에 집중할 뿐 사후 관리에는 소홀하다. 핵심 인물을 붙잡아놓으려고 다양한 인사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외국 기업과 크게 다른 점이다. 헤드헌터를 통해 사람을 뽑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헤드헌터산업을 정착시키려면 노동문화부터 선진화돼야 한다고 본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정순원 부사장은 『이직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하고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의 공정한 계약관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을 찾는 사람들인 헤드헌터, 몇 십년 동안 이어온 고용구조와 직장에 대한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음을 일러주는 예언자들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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