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3월 삼성전자는 미국 AST리서치사를 거액을 주고 인수했다. 3년을 운영하다 다시 매각하기는 했으나 당시만 해도 「잘나가는 컴퓨터회사」인 AST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가 왜 AST를 인수했는가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인수한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삼성전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AST」란 브랜드였다.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PC를 수출하는 업체였다. 연간 10여만대를 생산해 절반 이상을 해외시장으로 실어냈다. 그 중 95% 이상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했다. 물론 자사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삼성」이라는 고유브랜드가 있으나 세계적인 브랜드와 경쟁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AST의 브랜드를 탐낼 만도 했다.
이러한 사정은 삼성전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 국내 컴퓨터업계 대부분의 문제다.
삼보컴퓨터를 비롯, 대우통신 등이 나름대로 고유브랜드로 해외시장을 넓혀가고 있으지만 세계인이 쉽게 떠올리는 톱브랜드는 거의 없다.
최근 들어 국내 PC 수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내년에 전세계에 공급되는 PC 10대 가운데 한 대가 국산제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외국 현지에서는 국산 브랜드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국내 PC가 대부분 OEM방식으로 수출되고 있거나 브랜드 인지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업체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PC 수출물량 가운데 80% 정도가 OEM 방식으로 수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가브랜드로 수출되는 물량은 10대에서 2대도 안되는 셈이다. 그나마 이들 브랜드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국내 컴퓨터업체들도 이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외국 컴퓨터업체들의 대량물량 생산요청이 늘어나면서 OEM 수출 비중이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최대 수출업체인 삼보컴퓨터의 경우 지난해말부터 자가브랜드 위주의 수출전략을 구사하면서 자가브랜드 비중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나 올 하반기 들어 HP 등 주요 PC생산업체와 대규모 OEM 수출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면서 비중이 다시 높아지는 양상이다. 대우통신도 올해 OEM 수출비중이 7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AST사업 실패 이후 사실상 자가브랜드 수출실적이 거의 없으며 노트북컴퓨터를 중심으로 OEM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해외 PC업체의 하청생산을 맡는 OEM방식으로는 수익성, 자생력, 회사이미지와 브랜드 제고 등 모든 면에서 자가브랜드 수출을 앞설 수 없다.
국내 PC업체들이 세계 거대 공룡 PC업체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OEM 수출을 지양하고 자가브랜드 수출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PC 제조업체들이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사항으로는 우선 품질과 가격 경쟁력, 적절한 마케팅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
현재 삼보컴퓨터의 OEM 수출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지난 상반기에 미국 초저가 홈PC 시장에서 세계 주요 PC업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은 국내 PC업체의 자가브랜드 수출전략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례다.
국내 PC업체들이 자가브랜드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영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수출규모 못지않게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실적위주의 평가제도에 익숙해 있고 위험성이 적고 영업하기 쉬운 OEM 수출에 치중하고 있는 경영자의 기존 인식은 과감히 전환돼야 한다.
자가브랜드 수출의 기본은 우수한 품질이다. 이를 통해서만 세계 톱브랜드로 우리의 상표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업체들은 품질경쟁력 없이는 현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은 노력이 현지 사정에 맞는 적절한 마케팅전략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의 상표를 세계시장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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