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킬러 애플리케이션 (66);새로운 관계 구축 (13)

 개방적인 체제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조차 때론 직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곤란을 겪는다. 기술 선도업체인 휴렛패커드(HP)도 최근 이러한 문제에 봉착했다. 이 회사는 1980년대 고유의 독자적 구조보다 개방된 표준구조에 경영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당시 컴퓨터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에서 살아남았다. 따라서 HP는 자연스럽게 인터넷혁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HP는 일찍이 내부 전자우편을 구축했고 웹역사의 초창기부터 고객들에게 최고의 사전판매 인터페이스를 제공해 방대한 제품 카탈로그와 기술규격을 마음껏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HP는 내부적으로도 개방적인 체제가 제품 개발기간을 단축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발기간 단축은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과 속도에 의존해야 할 기업에 있어서는 필수요건이다. HP 브랜드는 고객에 대한 신속한 반응과 뛰어난 기술을 의미했다. 혁신은 실질적인 이익도 가져다 준다. 왜냐하면 신제품이 출하된 지 180일까지는 가장 높은 수익마진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개방구조의 속성상 경쟁업체들이 따라잡기 시작한다.

 제품 개발과정을 포함한 모든 체제를 고객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HP에 있어 자연스런 경향이었다. 고객들은 일찌감치 제품개발 단계에서부터 관여했고 이 협동적인 기술은 내부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대규모 글로벌 프로젝트 팀으로도 확장이 가능했다. HP고객들은 이미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터페이스를 개방하는 데 드는 금융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체제의 개방성이었다. HP 내부적으로나 공급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제품정보를 미리 공개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함께 작업할 수 있게 한 것은 좋았지만 고객들에게 인터페이스가 공개된다면 기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보가치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결국 체제의 개방은 경쟁업체에 상당한 유혹이 되는 것이다. HP 정보시스템사업부의 한 간부는 우리에게 HP와 외부세계를 차단하는 방화문(Fire Door)이 일단 열리면 차세대 제품개발 계획에 대해 경쟁업체들이 알지 못하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HP가 초기에 가졌던 우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HP는 일부 경쟁업체들이 이미 방화문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예 진입로를 안전히 개방함으로써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했다. 잉크젯 프린터사업에 있어 HP에 최대 경쟁업체인 캐논은 레이저젯분야에서는 프린터 엔진을 공급하는 주요 협력업체였다. 다시 말해 캐논은 HP의 전문적인 기술력에 상당히 접근해 있었던 것이다. HP는 자사의 전문성이 제품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속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똑같은 제품규격으로도 HP는 경쟁업체들보다 항상 먼저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고유의 정보를 상실하는 데 따른 위험도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지는 않았다. 또 어떻게 보면 고유정보의 상당부분도 처음만큼 그렇게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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