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본 연예가는 한 소녀의 출현으로 발칵 뒤집혔다. 몸무게 43㎏, 혈액형 A형, 취미 운동화 수집, 그리고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을 좋아하는 17세의 이 소녀는 다름아닌 일본 통산성이 정보화 캠페인의 포스터 모델로 내세운 「교코」라는 사이버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이른바 「러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싱글앨범과 뮤직비디오를 동시에 발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것이다.
사이버 대중문화의 최초의 스타로 꼽히는 「교코」의 올해 나이는 20세. 그녀는 곧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계획이다.
이듬해 1월, 서울 한 연구소에는 178㎝ 키에 68㎏의 수려한 용모를 지닌 한 청년이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이는 20세, 혈액형은 O형, 맑고 구김살없는 성격의 소유자라며 자신을 밝힌 이 청년은 다름아닌 아담소프트라는 회사에서 만든 사이버 스타였다. 이 청년은 이후 「세상에 없는 사랑」이란 타이틀곡 앨범으로 연예가를 한 동안 떠들썩하게 했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이처럼 미지의 세계와 인물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젠 사이버 인물의 탄생은 더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할 정도가 됐다.
무한한 디지털의 영토를 개척하려는 네티즌들과 커뮤니티들은 정형화된 문화와 예술을 거부하고 있다.
탈 장르 움직임도 그 중 하나다. 이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내용을 담으려는 욕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게 특징으로 꼽힌다.
「인터넷 웹아트」라는 것도 양방향 테크놀로지에 의한 결실이다. 일례로 시인들이 전자우편으로 인터넷사이트를 이용, 공동창작 행위를 하게 되고 네티즌들은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직접 보게 된다. 또 행위 예술가나 설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사이트를 만들어 직접 수용자와 대화 또는 주문을 듣고 행위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검색엔진의 초고속화와 사이버 커뮤니티의 확장으로 이같은 행위와 문화는 새천년의 보편적 정서로 떠오르고 있다.
시와 영상의 만남도 21세기의 뚜렷한 현상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시 분위기에 걸맞은 동영상과 음향으로 기존 활자매체에 의한 시집들을 밀어내고 사이버 공간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영화는 어떻게 변화할까. 앞으로 수년내에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질 것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인터넷 TV를 통해 「스타워즈」와 「쥬라기공원」 등을 감상할 수 있게 되고, 원하지 않으면 특수효과 등은 따로 편집해 볼 수 있게 된다. 음악이 좋으면 영화 사운드 트랙을 더 높여 들을 수 있고 원한다면 미녀 스타와의 사이버 대화도 가능하게 된다. 영화와 테크놀로지의 만남이 날이 갈수록 급속히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본산인 할리우드의 SF와 특수효과는 디지털 신기술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스타워즈 에피소드1」의 극치는 특수효과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동양 검술을 연상시키는 광선검과 중세 스타일의 왕궁, 수중도시, 그리고 벤허의 전차 경주를 패러디한 자동차 레이스 등의 연출은 디지털 기술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할리우드에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고 꼽히는 픽사(Pixar)스튜디오와 같은 특수효과 업체는 영화계의 선봉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연결하는 웹진과 각종 사이트들도 갈수록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웹상의 사이버 커뮤니티에서 머물면 되고 엔지니어들은 사이버 실리콘 밸리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이버 쇼핑몰은 쇼핑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될 것이다. 거대한 전자상거래 시장으로 변한 사이버쇼핑몰은 「더욱 편하게, 더욱 친절하게」 고객들을 불러 모으게 되고 인터넷 증권사이트는 객장에 나갈 필요없이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주식시세를 알아보고 주문을 낼 수 있게 해준다. 음악을 즐기는 이에게는 MP3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음악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 여행 사이트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앉아서 세계각국을 여행할 수도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가상현실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사이버 영토는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즐길 수 있는 반면 고독한 소외의식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없지는 않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짐으로써 다원적인 문화 형성에 도움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술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로 무장한 사이버 스페이스는 문화·예술의 새로운 양식과 추이를 낳고 또 다른 세계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란 점에서 한층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모인기자 inm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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