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비메모리 시장 현황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나라」 「한국경제의 지표이자 한국의 전자기술을 대변하는 산업」

 한국 반도체산업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에는 항상 「절름발이」 「기형아」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뒤따른다.

 미국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반도체 시장 중 D램을 비롯,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8% 가량인 246억달러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인텔·NEC·모토롤러·도시바·텍사스인스트루먼츠에 이어 매출액 순위에서 6위를 달렸고 현대전자·LG반도체를 포함, 국내업체들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

 올들어서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95년에 이어 제2의 호황기를 맞고 있고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에 따른 시너지효과로 국내업체가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 가량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의 매출액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반도체산업협회가 집계한 국내업체의 지난해 비메모리부문 매출액은 12억달러로 국내 반도체3사의 지난해 매출액 100억달러의 12% 가량밖에 안된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가 경제위기속에 단기적인 재무구조개선이 최우선과제로 부상하면서 국내 반도체3사가 그동안 중장기적으로 육성해온 비메모리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보류하는 등 비메모리사업을 크게 축소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화합물반도체 분야 미국 현지 자회사인 SMS를 미국 와킨스존슨사에 매각한 데 이어 비메모리사업부문 매출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던 전력용 반도체사업부문을 미국 페어차일드사에 4억5500만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현대전자도 자회사였던 미국의 컴퓨터 주변기기 반도체 제조회사인 심비오스사와 MPEG디코더 IC설계회사인 오디움사도 매각했다.

 LG반도체 역시 지난해 외국업체와 기술제휴를 통해 추진해왔던 Mpact칩사업을 제휴업체가 다른 반도체업체에 인수됨에 따라 사업을 중단하는 등 지난해 비메모리분야에 대한 투자는 전무했다.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육성은 정부까지 적극 지원에 나서는 등 국내 반도체업계의 오랜 숙원이었으나 IMF 경제체제라는 사상 초유의 극심한 경제침체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았다.

 그러나 올들어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향후 시스템LSI사업을 알파 프로세서와 주문형반도체(ASIC), 차세대 이동통신 및 멀티미디어 등 첨단 고부가가치제품 위주로 재편, 오는 2001년까지 누계매출 55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비메모리반도체사업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미국 컴팩사의 자회사인 디지털사와 공동으로 64비트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인 1㎓ 알파칩을 개발, 내년 4월부터 본격 양산에 착수할 예정이며, 미국 퀄컴사가 독점하고 있는 이동전화기용 핵심칩을 개발해 자사 내수용 이동전화기에 이 칩을 장착, 이달중 출시할 예정이다. 또 각종 전기·전자제품에 필수적으로 내장되는 8비트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개발, 양산에 착수했다.

 현대반도체(구 LG반도체)도 디지털 세트톱박스, 웹폰 등 각종 정보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자바칩과 32비트 리스크(RISC)프로세서에 디지털시그널프로세서(DSP)를 내장한 칩을 개발, 각각 올 연말부터 양산체제에 돌입할 계획이다.

 또 대기업의 사업포기로 한때 명맥이 끊겼던 화합물반도체사업 역시 우진반도체·광전자반도체 등이 이어받아 사업을 재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비메모리반도체사업에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의 경쟁력을 갖췄다면 이 분야만 집중적으로 육성해 1위 자리를 고수하면 될 것이 아닌가하는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듯하다.

 메모리는 비메모리반도체에 종속되는 변수다. 비메모리반도체는 인텔로 대변되는 CPU를 비롯해 MCU·DSP 등 집적회로(IC)기술이 적용되는 분야로 컴퓨터·가전기기·통신용 기기 등에 필수적으로 내장된다.

 새로운 통신·전자기기가 개발되기 위해서는 이같은 비메모리반도체 개발이 선행돼야 하고 이를 개발하는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한다. 새로운 경제체제를 이끄는 선도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정보통신기술이 전세계 경제를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 시장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비메모리반도체 개발을 필요로 한다.

 국내 반도체업체가 비메모리분야를 육성하려는 것은 종속이 아닌 주도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다.

 비메모리는 소위 움직이는 시장과 새로이 떠오르는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이때문에 비메모리반도체는 기술력과 함께 창의력·기획력·조직력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발상과 정확한 시장예측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패율도 높다.

 일부에서는 소프트웨어산업과도 유사하다고 한다. 수십개를 개발해 이 중 한개만 성공해도 수익은 보장될 수 있다고 한다. 외국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은 특정분야에서 특정업체가 시장을 주도하는 형태를 띤다.

 인텔은 CPU 시장에서 90%를, 모토롤러와 텍사스인스트루먼츠는 각각 MCU와 DSP 시장에서 50% 가량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비메모리반도체사업 육성계획에는 이미 형성돼 있는 시장이거나 때늦은 기술도 포함돼 있다. 또 대기업이 최근 선보인 일부 시스템IC는 외국업체로부터 핵심기술을 라이선싱해 개발한 것이어서 국내 비메모리반도체의 기술은 아직까지 후진국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구조는 비메모리로 전환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인텔이 메모리사업을 주력으로 하다 일본업체들이 잇따라 시장에 진입하자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80년대 중반 CPU사업으로 전환해 수년간 반도체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육성은 기술획득·설비투자·인력양성 등의 인프라 구축과 함께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분야라고 지적한다.

<김홍식기자 h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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