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들어서면서 개봉한 한국영화는 다시 멜로로 승부수를 내걸었다. 트로트가 노래방의 영원한 인기곡이듯 사랑 역시 영화의 영원한 테마다. 이장수 감독의 「러브」는 오랜만에 접하는 정통 멜로드라마다.
극적인 사건이나 재미를 좇는 대신 정공법을 택한 감독은 TV의 주특기였던 섬세한 감정묘사와 때로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의 일상적 삶을 포착해낸다.
「모래시계」 등으로 탄탄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송지나의 각본과 미국에서의 올 로케는 세련된 감성의 영상을 만드는 데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절제된 대사, 마라토너와 입양아라는 캐릭터는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 다뤄져온 궁핍한 소재에서 탈피하려는 의욕을 느끼게 한다. 그ㄴ나 전체적으로 「러브」는 「영화적이다」라고 표현하기엔 뒷심이 달린다. 「사랑의 풍경」만으로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을 장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툴지만 아름답게 시작되는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연기하기엔 배우들의 스타성이 너무 거북살스럽게 느껴지며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는 영화의 흐름을 로맨틱 코미디로 바꿔 놓는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명수(정우성)는 팀과 함께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온다. 그는 동료인 경철(이범수)과 함께 고된 훈련을 시작하지만 슬럼프에 빠져 팀을 탈퇴한다. 지난번 게임에서 35㎞ 지점에서의 중도 탈락 후 스스로 완주할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가 찾아간 곳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6촌형 브레드(박철). 브레드는 입양아인 제니(고소영)와 함께 살며 그녀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 건네준 한국 흙에 무궁화를 심고 부모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제니.
명수는 세탁소에서 형의 일을 거들며 제니에게 점차 호감을 느끼지만 말수가 적고 타인에게 무관심한 제니와 가까워지는 일이 쉽진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제니는 드디어 한국에 있는 엄마를 찾게 되지만, 이미 다른 가정을 거느리고 있는 엄마는 그녀를 만나는 것을 꺼린다. 슬픔에 빠진 제니를 위로해 주면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명수는 경철과 함께 마라톤에 참가한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들이 겪는 사랑은 어딘지 쓸쓸하다. 감독은 소속감을 잃어버린 그들의 외로움과 사랑의 의사소통을 구구절절한 대사로 옮기는 대신 심수봉의 「미워요」와 존 레논의 「러브」를 통해 얘기한다.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도, 그렇다고 미국인이 될 수도 없는 「미국 속의 한국인」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영화 「러브」는 따뜻하긴 하지만 가슴 울림이 없고,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여운은 있지만 일상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작품이 되고 말았다.
<엄용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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