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기술 컴퓨팅.. "아날로그 경영"땐 미래 없다

 기흥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가면 서류보관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결재를 전자결재 방식으로 처리하면서 종이로 된 문서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우리회사 직원들이 연간 사용하는 문서를 늘어놓으면 경부고속도로를 45회나 왕복할 정도』라면서 『이러한 불합리를 개선하지 않고서 타이밍과 스피드가 생명인 디지털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성큼 다가온 21세기 디지털 혁명을 앞두고 기업마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기술은 모든 데이터를 0과 1이라는 수치로 표준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기술은 의사소통의 모든 길을 개방하며 개인과 조직에게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디지털 혁명의 바람이 가장 먼저 불어닥친 곳은 바로 기업. 세계 기업들은 아날로그 환경에 기반을 둔 경영전략을 버리고 디지털 환경에 맞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찾느라 저마다 부심하고 있다.

 미국 보잉사는 지난 90년 777기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기반한 디지털 방식을 채택해 종전보다 시간을 30%, 폐기물을 60% 이상 줄였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기술은 이제 보잉사의 사례를 낡은 일로 만들었다. 90년대말 디지털기술은 단순한 생산방식의 혁신을 넘어 경영 전반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네트워크기술인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면서 기업활동의 무대는 사이버공간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유통망을 전혀 갖지 않고도 세계 어느 곳에나 물건을 팔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유통망 확충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던 기업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판이다.

 유통망에만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인터넷을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게 되면서 고객에 대한 접근방식도 종전과 크게 달라졌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자사가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하려면 한참 걸리기 일쑤였다. 제대로 반영했다고 장담조차 못했다. 표본조사의 한계로 다양한 고객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걸러내기 힘든 데다 조사하는 데에도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인터넷으로 불과 며칠만에 고객의 요구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을 앞세운 디지털 혁명은 산업 지도까지 바꿔놓는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미국의 항공산업. 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미국 여행사들은 최근 도산 직전에 몰렸다. 델타항공사는 비행기 운행보다 프라이스라인과 같은 인터넷마케팅업체에 대한 지분소유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정도다.

 디지털이 기업경영의 화두로 떠오르자 국내외 기업들은 앞다퉈 디지털 환경에 맞게 경영구조를 뜯어고치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경영체제를 갖추기 위해 정보기술(IT)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보기술은 그동안 일부 업무를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했으나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활동 전반을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종합고객관리(CRM), 데이터웨어하우스(DW), 공급망관리(SCM) 등이 그 대표적인 정보기술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정보기술을 전략적기업관리(SEM), 활동원가관리(ABC), 밸런스트스코어카드 (BSC), 위험관리(RM), 지식경영, 가치경영 등의 최신 경영기법과 연계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모색중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보기술의 도입만으로 기업의 디지털 경영체제가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정보기술을 효율적이며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없으면 첨단 정보기술도 무용지물이다.

 경영혁신을 위해 정보기술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국내 기업은 많으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러한 경영자를 찾기란 더욱 어렵다. 인식이 그만큼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

 디지털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기업은 저절로 디지털경영 체제를 이룬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신도 정보기술보다는 사람의 몫일 따름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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