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가전산업의 미래

 국내 가전산업은 태동한 지 만 40년만에 세계 제2위의 자리에 올라서는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한 대량생산과 이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전세계 시장을 공략해왔으며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를 부착한 가전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반도체, 정보통신 등 이른바 첨단기술을 앞세운 제품들이 국내 기술에 의해 속속 개발되면서 90년대 후반들어 가전산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한계산업이라는 굴레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기술보다는 가격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존 가전제품은 선발업체들의 해외 생산 이전과 후발업체들의 추격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IMF이후 국내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경제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대상에 가전산업이 포함된 것은 이미 한계에 이른 산업 특성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 가전산업의 한 축을 이끌어왔던 대우전자가 빅딜 대상에 포함돼 8개월 동안 존폐의 기로에서 필사적인 생존 싸움을 벌였는가 하면 나머지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사업구조의 고도화라는 명분아래 조직축소 및 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국내 가전산업이 다가오는 21세기에 다시한번 세계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의 선진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아날로그 제품은 과감히 해외로 이전해 현지에서의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이에 따른 공백은 가전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정보가전으로 다시 채워나가야 한다.

 가전산업이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전자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산업이라고 한다면 디지털시대의 도래로 나타나는 생활혁명에 걸맞은 정보가전기기는 바로 가전산업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가전업체들이 그동안 아날로그제품을 생산해오면서 축적된 노하우는 디지털시대의 가전제품, 즉 정보가전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임은 분명하고 여기에 정보가전에 대한 선투자로 세계 유수의 가전업체에 비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디지털시대에 국내 가전업체들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해주고 있다.

 따라서 미래 국내 가전산업의 경쟁력은 정보가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국내 가전업계가 새로운 세기의 주력이 될 정보가전시장을 이끌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강점을 살려 우리가 히트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국제적인 표준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디지털시대의 정보가전제품은 기존 아날로그제품과는 기능 면이나 성능 면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가전산업이 우수한 기능과 튼튼한 성능 등 주로 메커니즘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다가올 정보가전시대에는 디지털기술과 아이디어가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가전의 핵심기술은 전통적인 가전의 영역인 영상(AV)기술과 여기에 정보를 담는 멀티미디어플랫폼 그리고 정보와 영상을 기록해두고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저장기술 등이다.

 이같은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융합돼 일반 가정에서 손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만 디지털시대에 성공하는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기술표준화의 문제다. 아날로그제품과는 달리 모든 제품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디지털시대에 서로 연동되지 못하는 제품은 상품가치가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하나의 국제표준으로 정착시키는 것만이 디지털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제품전략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기술 발전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가장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전제돼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개발해 가장 먼저 세계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디지털TV와 DVD플레이어를 비롯해 삼성항공의 디지털카메라 등이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가장 먼저 제품을 출시하고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디지털시대에서 국내 가전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기술의 복잡화·융합화가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기능을 갖춘 수많은 제품들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자사의 역량을 집중시켜 차별화할 수 있는 상품을 선정,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과거 아날로그시대의 백화점 전략으로는 막대한 개발비와 초기 수요창출 비용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디지털TV와 DVD플레이어를 필두로 디지털캠코더와 디지털카메라, LG전자가 디지털TV와 CD롬 드라이브를 승부사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가전산업의 패러다임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 조직의 변신작업도 기술의 발전속도만큼이나 가속화해야 함은 당연하다.

 삼성전자가 가전사업본부를 정보가전총괄이라는 조직으로 개편하고 LG전자가 디지털경영을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변신작업의 일환이다.

 이제 국내 가전산업은 질적 변신을 시도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의 이행은 국내 가전업계에 기술에서 상품, 조직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변화는 세계 제2의 가전왕국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국내 가전업체들이 세계 제1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도전의 기회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외국 선진기업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시련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아날로그시대의 영광을 다가오는 21세기에 재현하기 위해서는 정보가전의 육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것은 국내 가전업계에는 선택이 아닌 필수과제가 되고 있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