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35)

 나는 그날 오후 그 부근의 고궁과 거리를 돌아다녔다. 히라주쿠 부근에는 공원이 많아서 산책하기 좋았다. 그러나 그 규모가 커서 한바퀴 돌면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공원 한쪽의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큰길쪽으로 나가서 택시를 타고 서점을 찾아갔다. 택시기사가 안내한 서점은 도쿄역 앞을 지나 니혼바시 거리를 달려 조금 올라간 곳이었다. 오층 건물이 모두 서점이었는데, 그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나 다양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의 삼층에 있는 컴퓨터 관련 책을 둘러보았다.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신간 서적도 많이 눈에 띄었다.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책을 많이 구입할 수는 없었으나, 나는 최소한의 경비를 남겨두고 모두 책을 샀다.

 나는 컴퓨터 관련 원서를 접하면 가슴이 설레었다. 그것은 마치 애인을 만난 것 같이 설레는 기쁨을 주었다.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해도 마냥 즐거운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관련 서적에 대해서 나는 어떤 애모의 본능조차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보따리 책을 사들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시간이 조금 늦어서 현관을 들어서는데 후쿠오카가 현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올라갔더니 안 계셔서 외출한 줄 알았지요. 서점에 들렀나요?』

 『책을 좀 샀지요. 역시 컴퓨터 관련 서적이 많이 있더군요.』

 『많기는 하지만 별로 유용하지 않은 책들도 있지요.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은 앞으로 젊은이들의 의식을 마비시킬 것입니다.』

 『게임에 몰입하게 되겠지만 그들을 마비시킨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유행이며, 새로운 창조를 몰고 올 것입니다.』

 『그럴까요? 그것은 나하고 견해가 다르군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일찍 결혼하여 열살 된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기에 미쳐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편에 중독된 것 같아서 그것을 빼앗아버리자 아이가 바보가 되어버려 다시 주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때만 하여도 컴퓨터 게임기는 도스 방식이면서 원시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꿈틀거리고 있었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앞으로 한국에도 컴퓨터 게임의 붐이 올 것이라는 예측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93년에 나는 실제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그 사업은 실패하였다. 연구실에서 수십명이 달려들어 일년 반 동안 새로운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획기적인 것을 창출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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