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행시기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제조물책임(PL:Product Liability)법이 최근 입법예고를 거쳐 올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2001년과 2002∼2003년 등 도입시점을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됐던 PL법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1년께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법의 시행은 IMF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적어도 IMF체제를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연기돼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PL법은 공산품과 가공식품 등 제조물의 결함에 의해 소비자가 생명·신체·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을 경우 제조자는 자신의 과실 여부에 상관없이 손해배상을 책임져야 하는 제도다. 또한 제조업자 확인이 불가능할 때는 유통업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며, 수입품에도 적용돼 손해를 입혔을 경우 수입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매우 강력한 소비자 보호제도인 이 법의 소멸시효는 손해 및 제조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제조물을 유통시킨 날로부터 10년이다.
지난 82년 의원입법 형태로 처음 발의됐던 이 법은 그동안에도 관련산업계의 시기상조라는 지적에 따라 입법이 유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또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게 됐고 정부는 이에 따라 최근 입법예고를 거쳐 올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하는 등의 입법절차를 확정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론 이 법이 시행되면 소비자의 권익이 대폭 증진되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특히 제품 결함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민사소송 등을 통해 제조업체의 과실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제품의 결함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만으로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소비자 권익이 대폭 증진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모든 기업이 제조나 유통과정 등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위해요인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을 증대시키는 효과도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서두르면 탈이 난다. PL법도 마찬가지다.
PL법의 핵심은 제품을 만들거나 유통시킨 기업의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얼마만큼 배상을 하느냐는 문제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법안은 제조자가 거의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큰 부담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일본이나 유럽보다 훨씬 강력한 조치다.
제조물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것도 문제다. 특히 사고발생시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워 피해자의 과실인 경우에도 제조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제외시킨 전기 등 무형에너지와 소프트웨어 등 전자적 기록 등을 제조물책임법에 포함시켰을 정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소멸시효를 제품의 내용연수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제품을 유통시킨 때로부터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제품을 생산한 기업은 제품이 폐기될 때까지 책임지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행시기다. 제조물의 결함을 제거하려면 결함분석 및 제품의 설계변경이 선행돼야 하며 이에는 대략 3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예기간을 1년으로 잡은 것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소비자 보호정책의 강화와 이를 위한 소비자 피해구제 영역 및 창구의 확대는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적 흐름이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채 PL법의 조기 제정 및 시행을 서두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더욱이 지금은 IMF 극복이라는 매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시점이다. 모든 기업이 제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하는 중요한 시기로 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최대의 관건이자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PL법의 조기도입을 추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PL법은 관련업계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최소한 3년 정도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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