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부터 98년 말까지 4년 동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수행한 400여건의 기술과제 가운데 그 결과를 민간에 이전한 것은 194건, 상품화에 성공한 기술은 49건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한술 더 떠 97년부터 99년 7월까지 3년반 동안 2254건의 수행과제 중 기업에 이전한 건수는 고작 43건에 불과했다. 96∼98년 수행한 1238건의 연구과제 가운데 41건의 이전에 그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사례도 마찬가지다.
정부부처가 직접 주관하는 연구개발사업 실적은 그래도 조금 낫다. 지난 93년부터 98년까지 정보통신부(체신부 포함)가 주관한 「정보통신 연구개발사업」의 경우 총 기술수행 과제 870건 중 절반에 가까운 407건이 민간에 이전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예산 투입 규모에 비해 기술이전 수입은 1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조사발표한 「99년도 세계 국가경쟁력 연감」은 우리나라 출연연구기관의 기술개발과제나 정부부처의 연구개발사업 결과가 부실하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입증해준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책연구 기술개발에 대한 예산투입 규모는 세계 7위권. 그러나 국가기술 경쟁력에서는 조사대상 47개국 중 28위였다. 연구과제 선정과정이나 개발결과에 대한 충분한 사전논의 없이 연구비를 마구 쏟아붓다보니 빚어진 결과들이다.
물론 출연연구소와 민간기업간 끈끈한 유대관계를 매개로 투자 대비 몇십배의 결실을 맺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들어 빛을 본 TDX10 전전자교환기·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 등은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 상당한 수출실적까지 거뒀다. 하지만 투자규모를 감안한다면 이같은 성공사례는 매우 드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몇 해 전 한 민간업체가 정부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안했던 컴퓨터 이중(二重) 운용체계 개발과제에 과학기술부가 20억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붓고 낭패를 본 사례는 어느 부처, 어느 출연연구소를 가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돼버렸다. 이 사례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웬만한 컴퓨터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중 운용체계를 탑재한 컴퓨터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연간 3조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정보과학기술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술개발 투자에 대한 관리가 체계화되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책개발기술과제가 민간기업에 이전돼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의 실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연구개발 관계자는 『시장성에 바탕을 둔 과제의 선정과 추진 그리고 그 결과를 기업에 이전해주고 「끝맺음(Finishing)」까지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연구 초기단계부터 기술적·사업적 평가가 이뤄져야 시장성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단계부터 졸속으로 이뤄지는 과제 평가방식은 현재 국책연구 개발기술의 민간이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출연연구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1∼2개월만에 초고속으로 과제수행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선정기관에서도 사업성과 기술성을 갖춘 과제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허술하기는 연구결과에 대한 심사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보건복지부 등이 현재 추진중인 연구과제 수만도 연간 수천건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실적 평가과정은 몇시간 만에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KAIST의 한 교수는 사전에 연구실적에 대한 개요조차도 받아보지도 못한 채 현장심사에 임해야 한다고 실토하고 있을 정도다.
기술이전에 대한 「타이밍」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과제당 적게는 몇억원에서 많게는 몇십억원이 들어가는 국책연구 개발 결과를 효율적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절한 시기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타이밍을 놓치는 이유로 비전문가의 불필요한 개입이나 복잡한 행정절차 등이 가장 많게 나타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덕단지내 한 출연연구소장은 『연구개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활용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전에 대한 임무』라고 전제하고 『성공적인 기술이전을 위해서는 이전이나 평가 책임자가 관련기술의 세계 시장동향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어야 하며, 기술 개발자 역시 사업화 과정의 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민간기업간에 「바늘과 실」 같은 공동운명체적인 기술유기체제가 형성돼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온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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