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FA시스템> 수입선 다변화 해제 그 이후

 지난달 말 수입선 다변화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그동안 정부의 보호 아래 비교적 순탄히 성장해 왔던 공작기계 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취약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78년에 도입됐던 수입선 다변화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우리 제품의 보호막이 모두 사라졌다.

 그동안 수치제어(NC) 선반 등을 제외한 금속 절삭가공용 공작기계 및 레이저 가공기 외에 한국산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기에 관해서는 일본산이라도 예외적으로 수출을 인정해 왔으나 마지막까지 규제 품목으로 남은 것이 고도의 가공 정밀도를 보이며 공작기계 시장의 절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머시닝센터 및 NC 선반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은 일본산 공작기계가 아무런 규제없이 실시간으로 국내에 반입될 수 있게 됐다.

 실제 일본 공작기계 업체들은 공장 신축, 법인 설립, 대리점 구축 등의 다양한 형태로 한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게다가 그동안 수입선 다변화 규제에는 묶이지 않았어도 직접 진출보다는 한국 업체와 판매 및 기술 제휴를 통한 간접 진출 형태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던 일본 산업용 로봇 업체들까지 가세해 이들의 한국시장 공략 바람은 거대한 태풍으로 둔갑할 태세다.

 야마자키 마작은 수입선 다변화 제도가 폐지된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상당량의 수주 잔고를 이미 확보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이미 서울에 영업 거점을 설치한 이 회사는 판매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5명의 직원을 상당수 증원할 계획이다.

 오쿠마도 한국 내 현지 대리점과 협력, 최근 서울에 테크니컬 센터를 개설, 본격 업무를 개시했다. 이 센터는 고객이 직접 기계를 작동시키면서 제품의 특징 및 조작방법 등을 이해시킴으로써 판매를 늘리는 기술영업의 거점 역할을 맡을 예정이며, 신제품을 포함한 각종 공작기계를 전시하는 쇼룸 기능도 갖추기로 했다. 또한 이 회사는 과거 연삭반 등을 판매해 왔지만 앞으로는 머시닝센터와 NC 선반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사양에 맞춘 부품을 일본에서 독일의 제조, 판매 자회사로 보내 선반으로 조립한 후 유럽 경유로 출하해온 시티즌시계는 7월 이후 이같은 경유 과정이 필요없게 돼 수출량을 3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쓰가미는 신시장 개척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에 공작기계 판매 대리점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직접 진출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술 제휴 관계에 있는 한국 업체의 영업 부문을 대리점으로 승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리정기제작소는 컴퓨터 수치제어(CNC) 선반과 머시닝센터를 한국에 수출한다는 계획 아래 한국내 기술 제휴선을 통해 7월부터 공작기계 판매를 개시하고 대형 물량의 경우 수주 활동에도 직접 나설 계획이다.

 산업용 로봇 업체인 가와사키중공업은 기존 대우 및 기아를 통한 판매체제를 유지하면서 현지 법인을 별도로 설립했다. 자본금 15억원을 전액 출자해 인천 남동공단 내 설립한 이 회사의 명칭은 「가와사키 머신 시스템즈 코리아(KMSK)」로 정해 졌으며 로봇 판매는 물론 메인터넌스, 오버홀(Overhaul) 및 리트로핏(Retrofit) 등 재활용 사업과 애프터서비스, 부품 공급 등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 수치제어(CNC) 장치 업체이자 산업용 로봇 업체인 파낙은 지난달 15일 경남 김해시에 약 80억원을 투입, 로봇 시스템, 와이어 커트 방전가공기, 컴퓨터수치제어(CNC) 드릴, 전동 사출성형기, 산업용 로봇, 기계 및 자동화시스템 생산라인 전용공장을 신축했다. 향후 이 공장을 아시아지역 로봇 생산 거점으로 육성해 세계 로봇시장 점유율을 기존의 20%에서 50%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국 공작기계 업체들도 일본 제품 본격 상륙에 따른 여파를 예측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업체들에 가장 우려하는 덤핑 여부와 중고 장비 판매 여부가 초기 시장을 얼마만큼 장악하느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덤핑 여부에 관해서는 일본 업체들이 가격 파괴를 통해 한국시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쉽게 할 수 없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가격 파괴를 통해 가격 경쟁을 하게 되면 물론 한국 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겠지만 일본 업체들도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적극 공세로 한국시장을 장악하려 해도 한국의 경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한국공작기계공업협회를 중심으로 국내 업체 대표들이 일본공작기계공업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 공작기계 업체 대표들과 만남을 갖고 덤핑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그보다는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일본산 기계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점을 한국측 유저에게 제시하는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한국 업체를 적대적 관계로 만들기보다는 적절한 상호 협력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신뢰를 쌓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고속가공기나 고정밀가공기 등 중대형 기종이나 전용장비의 경우 미국·독일·스웨덴 등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던 수입선이 일본으로 단일화할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으나 원래 국내 업체들이 장악하지 못한 시장이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공작기계공업협회 관계자는 『수입선 다변화가 해제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업체들마다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마련해 놓았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 공작기계 업체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과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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