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인제대 외국어교육연구원 교수
최근 들어 정보기술에 대한 논의가 다소 주춤해진 대신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같은 문화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추세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영화라는 문화상품을 예로 들어보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수백만대 수출한 것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지난해 전세계 극장가를 강타한 「타이타닉」은 이제껏 전세계에서 개봉된 영화 중 최초로 입장수입이 10억 달러를 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쉬리」가 공전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와 같이 영화 한편을 가지고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화상품의 개발은 각국, 각 기업이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라는 데 이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아직까지 정보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조차 뚜렷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문화」라고 하면 거의 「엘리트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즉, 문화적인 것과 비문화적인 것을 구분할 때 문화적인 것은 형이상학적·추상적·관념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여타 물질적인 제반 현상은 비문화로 분류되었다.
이에 따라 향유의 대상으로서 문화도 고전음악, 예술품, 박물관의 전시품 등으로 한정됐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소위 향유의 고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의 엘리트만이 포함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60년대 이후 TV 등 각종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대중들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됨과 동시에 엘리트 문화와는 구분되는 대중문화가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는 바로 대중들의 욕구와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오며 요즘은 문화가 인간의 생활양식과 연관된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그 중 미디어를 통해서 이윤 창출이 가능한 항목을 위주로 급속히 상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가 부각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삶의 질이 향상되어 사람들이 좀더 고차원적인 인간성 실현을 위한 소비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진 점과, 20세기 산업사회를 떠받쳐 왔던 포드주의가 70∼80년대 구미 선진국들을 선두로 한계를 나타내기 시작한 점이 맞물려 서로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포드주의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등으로 효율적인 대량생산을 유도하고 대량생산된 물적 상품을 대량소비함으로써 이윤을 추구해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하자는 제도다.
이러한 포드주의의 성패 여부는 일반 소비자들이 얼마만큼 구매를 해줄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건으로, 미국에서는 1920년대 말 과소소비로 인한 대공황기에 TVA 등의 공공투자와 포드자동차회사 등 사적 부문에서 고용자의 임금을 올려 궁극적으로 전체 소비자의 가처분 소득을 향상시킴으로써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정책은 성공적이어서 포드주의는 20세기 후반까지도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을 지탱하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왔다.
하지만 70∼80년대를 지나며 미국을 선두로 물적 상품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고, 제조업 분야에서 국제적인 우위를 지속할 수 없었던 동시에 사회의 지속적인 분화로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화함에 따라 더 이상 포드주의를 따르는 대량생산대량소비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조업 외의 분야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방편의 하나로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서있던 문화상품에 적극적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현재 진행중인 정보통신혁명과 다양한 뉴미디어 기술의 개발에 편승하여 자국의 문화상품을 널리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되어왔다. 80년대 말 노동자 대투쟁으로 임금이 급격히 상승, 자동차 및 내구재 중심의 내수시장이 확장되며 본격적인 포드주의 체제로 들어왔으나 90년대 중반 이후 내수시장의 조기 포화라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국가적인 정보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새로운 상품영역으로서의 문화에 대해서는 중요성만 인지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발전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껏 별로 논의가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의 총아로 전망되고 있는 문화가 정보통신 분야와 어떠한 관계에 있기에 구미 선진국에서는 양자의 발전을 동시에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네트워크 기술과 디지털 기술의 통합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혁명이 정보화의 하드웨어적인 진행이라면 문화란 이 하드웨어를 통해서 유통되어야 하는 상품 개발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궁극적으로 정보통신혁명과 문화는 정보화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양자간의 균형적인 발전이 있어야만 정보사회가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국가나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어느날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라 그간의 수많은 투자와 노하우의 축적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하드웨어적인 정보화에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소프트웨어로서의 문화에도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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