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B업계, 채산성 악화 "탈진"

 국내 주요 인쇄회로기판(PCB)업체들이 갈수록 악화되는 채산성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초만 해도 내수 경기가 회복되고 수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주요 PCB업체들은 지난해에 버금가는 호황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올 1·4분기까지만 해도 이같은 기대는 현실화되는 듯했다. 예상대로 내수경기는 급격한 회복세로 돌아섰고 수출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고속성장을 할 것처럼 보이던 국내 PCB산업은 설마 했던 복병들이 잇따라 등장,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특히 채산성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국내 PCB업계에 나타난 복병은 다름아닌 환율. 올해 초 1200원대를 넘어섰던 달러 대비 원화의 환율은 1150원대로 떨어졌다. 환율 하락은 전체 매출액의 60% 정도를 수출로 채우는 국내 주요 PCB업체에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미리 받아놓은 수출 주문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채산성을 맞춰 왔으나 최근들어 새로 계약한 수출 물량은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환율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질 경우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

 수출 채산성 악화와 더불어 국내 주요 PCB업체를 괴롭히는 것은 내수시장용 PCB의 납품단가 하락. 주요 세트업체들은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PCB 가격을 지속적으로 깎아 내리고 있으며 과거 반기나 분기마다 가격 협상을 해오던 관행을 깨고 월단위로 가격을 재산정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그동안 국내시장 공략을 호시탐탐 노려온 대만 PCB업체들이 가격을 무기로 국내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아직까지 대만 PCB업체들이 수주해간 물량은 컴퓨터용 주기판과 매스램에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 일반 다층인쇄회로기판(MLB)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만업체의 국내시장 공략으로 물량이 줄어든다는 위기감보다는 가격질서 문란이라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욱 크다는 것이 PCB업계의 지배적인 인식이다.

 대만업체가 싼 가격으로 국내 세트업체와 협상을 할 경우 세트업체들은 대만업체가 제시한 가격을 국내 PCB업체에 공개하면서 지속적 거래를 위해 가격을 대만업체 수준에 맞춰 줄 것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환율하락과 대만 PCB업체의 공세로 국내 PCB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은 올 상반기 국내 주요 PCB업체의 영업실적에서 입증됐다

 삼성전기·대덕전자·LG전자·코리아써키트·이수전자·청주전자·심텍 등 주요 PCB업체들이 최근 추산한 올 상반기 영업실적에 따르면 PCB 수주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평균 30% 정도 늘어났으나 매출액은 10%대의 신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경상이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동기보다 오히려 줄어들었으며 2·4분기 이후 순이익 증가율은 거의 정체되고 있다는 것이 국내 PCB업계의 설명이다.

 대덕전자의 한 관계자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떨어지는 바람에 달러로 계산한 수출은 늘었으나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증가율이 미미한 실정』이라면서 『환율이 앞으로 더욱 떨어지면 국내 PCB업계의 채산성은 거의 기대할 수 없을 정도』라고 우려했다.

 중견 PCB업체의 한 관계자는 『채산성은 악화되고 있으나 물량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설명하면서 『제조 원가를 줄이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국내 PCB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풍요속의 빈곤」 현상을 겪고 있는 국내 PCB업계가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마련하지 못하면 국내 PCB산업계는 당분간 다리품만 파는 고달픈 시절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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