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컴퓨터 도서 중복출간 유감

송영섭 대청미디어 상무

 교보나 영풍 등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서점은 현재의 독서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 문학·잡지·교과서·어학·경제경영 등 분야별로 정연하게 정리된 진열대 어느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지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된다.

 요즘 같이 본격적인 휴가시즌을 앞둔 때에는 단연 여행관련 도서코너가 북적거린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 무더위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추리·공포·팬터지 소설 코너에도 물론 많은 독자들이 몰린다.

 그러나 계절에 아랑곳없이 때를 가리지 않고 늘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있다. 바로 컴퓨터 관련서 진열대 부근이다.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면서부터 이곳은 어떻게든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IMF 이후 출판계 전체가 부도의 한파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유독 컴퓨터 도서 코너에만은 독자들이 크게 줄지 않았다.

 정보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한, 컴퓨터 도서 코너에 사람들이 진을 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독서를 통해 정보시대에 맞게 자기를 변화시키고 경쟁력을 키우려는 독자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리고 컴퓨터 관련도서를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는 양서들을 지속적으로 펴내야 한다.

 그러나 컴퓨터 도서 코너에 몰린 독자들의 틈을 비집고 과연 어떤 책들이 나와 있는지 확인해 보면 출간도서의 다양성이나 깊이에 금방 실망하고 만다. 출간도서의 종수만 따진다면 아마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출간 종수가 많다고 독자들의 다양한 요구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엇비슷하고 제목과 출판사 이름만 다른 책들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정보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책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종류의 컴퓨터 책들이 서로 차별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독자들의 수준에 따라 내용상의 차별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사회가 요구하는 분야별 차별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저 시장이 커서 뭔가 될 성싶은 초보 활용서 분야에만 수많은 책들이 몰려 있다. 책의 판형이나 편집형태, 표지, 심지어 내용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없이 엇비슷하다. 어느 출판사가 어떤 분야의 책을 내서 돈을 벌었다 싶으면 부랴부랴 컴퓨터 좀 만진다는 필자들을 골라 그리로 몰려든 결과다. 몇몇 대형 출판사들은 아예 거의 유사한 내용을 이름만 바꿔 몇 종씩 출간하기도 한다.

 컴퓨터 도서의 중복출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그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독자들은 서로 엇비슷한 책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고르느라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국가 지식산업의 초석이 되어야 할 출판사들은 중복출판의 폐해로 말미암아 서로를 질식시키고 있다.

 이제 이런 시정잡배와도 같은 중복출판 행태를 집어치우자. 남들이 참신한 기획과 콘셉트로 돈 좀 벌었으면 넉넉한 마음으로 그냥 더 벌게 기원해 주자. 그리고 우리는 좀더 새로운 기획과 내용으로 승부를 걸어보자. 그럴 때 비로소 독자들의 요구에 정확히 부응하고 정보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출판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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