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기상청이 일본 NEC에서 도입한 슈퍼컴퓨터(모델명 SX­5/16A)가 지난 1일부터 본격 운영됨에 따라 우리나라 기상예보의 정확성이 조만간 선진국 수준까지 올라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상청은 1초에 1000억번 이상 부동소수점 연산(100기가플롭스)을 처리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가동함에 따라 앞으로 우리나라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현재의 83%에서 85% 이상으로 크게 높아져 86%인 미국, 일본이나 87%인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설치된 컴퓨터의 성능은 1초에 1280억번에 달하는 부동소수점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데다가 기억용량 또한 주기억장치(128GB), 보조기억장치(1400GB)가 모두 국내 최고 수준.

 이 슈퍼컴퓨터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우선 이 슈퍼컴퓨터는 약 한달 동안 시험가동을 거쳐 첫 일기예보에 투입되던 지난 1일에도 인공위성 등을 통해 수집된 기상정보를 불과 한시간에 완벽하게 계산해냄으로써 놀라운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기예보를 1회 실시하기 위해서는 동쪽의 일본 앞 바다에서 서쪽의 티베트고원, 그리고 남쪽의 필리핀에서 북쪽의 바이칼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가로, 세로 40㎞씩 격자로 분할, 총 1만2000개에 달하는 지점의 기상정보를 모두 계산한 후 이를 표준 기상예측 모델과 비교함으로써 매 1시간 후의 기상상황을 미리 점치는 방식을 활용한다.

 기존의 컴퓨터로 이러한 계산을 하는 데에는 기상청 컴퓨터 1호기(크레이 2S)와 2호기(크레이 C90), 그리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임차해 사용하고 있는 슈퍼컴퓨터(T3E)를 모두 동원해도 8시간이나 걸렸다. 이우진 수치예보 과장은 『12시간 앞의 기상예보를 위한 데이터 처리에만 8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기상예보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시간을 다퉈 날씨를 발표해야 하는 예보관들이 슈퍼컴퓨터 도입을 가장 반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보관들은 정확한 기상 예측 못지 않게 시간과의 싸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슈퍼컴퓨터만으로 기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기예보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지상·해양 등 광범위한 지역의 기온·기압·습도·풍향·구름·강수량·조류 등 다양한 기상관측 데이터를 수집하고 다음으로 이를 각종 예보모델에 따라 분석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보자료를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신속하게 알리는 것도 주요 내용에 포함된다.

 현재 국내에는 기온·기압·습도·풍향·강수량 등 기초적인 기상자료 수집을 담당하는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전국에 걸쳐 약 400개나 설치돼 있는 것을 비롯해 호우·우박·낙뢰 등 돌발적인 기상현상과 태풍을 추적,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가 서울, 부산 등 5군데에, 또 30㎞ 상공의 기압·온도·바람·습도를 측정할 수 있는 고층 기상관측 장비도 제주와 포항 2군데에 각각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의 일기예보를 위해서는 또 중국·시베리아·일본·필리핀 등 주변국은 물론 몽골·유럽 등 전 지구적 기상정보 수집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정지기상위성(GMS)으로부터 하루에 28회, 극궤도기상위성(NOAA)으로부터 4회씩 하루에 총 32회에 걸쳐 구름사진 등 다양한 기상정보를 제공받는다.

 일기예보의 정확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집되는 기상 데이터의 질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난해 지리산 등에서 발생한 돌발성 호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기상 레이더망을 촘촘하게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기상 레이더는 빗방울, 구름 등에 전자파를 발사한 후 돌아오는 반사파를 분석해 호우·우박·낙뢰 등 돌발적인 기상현상을 감시하는 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현재 전국적으로 5군데 밖에 설치돼 있지 않아 지난해 지리산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돌발성 호우예보에는 속수무책이었다는 설명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또 컴퓨터 계산능력이 아무리 향상돼도 변화무쌍한 기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한다. 예를 들면 현재 가로, 세로 40㎞마다 떨어져 있는 격자간격을 일본 수준인 10㎞로 좁히는 것을 전제로 이틀 동안 일기예보를 하는 데 필요한 계산량만도 최근 국내에 도입된 기상용 컴퓨터를 다 동원해도 48시간이 훨씬 넘게 걸린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일기예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전지전능한 신만이 아는 불가사의한 영역」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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