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자료를 접할 기회는 흔치 않다. 자료가 보관된 박물관에 가더라도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뒤져 원하는 내용을 찾기란 어렵다. 하지만 CD롬 전자책의 등장으로 옛 선조들의 지혜와 예술혼이 숨쉬는 문화유산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한식날엔 왜 찬밥을 먹는 걸까. 아이들이 소금물에 볶은콩을 먹으며 물동이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두드리고 노는 「수부(水缶)」놀이는 왜 하는 걸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의 민속」을 읽으면 궁금증이 풀린다. 이 타이틀에는 신세대들은 들어본 적도 없을 우리 민족의 민속놀이와 세시풍속, 관혼상제가 한국어와 영어·일본어로 수록돼 있다.
중국에 5성4현이 있다면 우리에겐 18유현(儒賢)이 있다. 설총·정몽주·이황·이이·김인후·최치원 등 선인들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버팀목으로 깊이 있는 사상을 후대에 남겼다.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내놓은 CD롬 「동양고전」에는 이들의 전집이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방대한 역사기록이다. 하지만 전문이 한자로 기록돼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데다 국역본의 경우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자그마치 5년이 넘게 걸리는 엄청난 양이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 CD롬」은 민족문화추진위원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만든 413권의 실록국역본을 CD롬으로 옮겼다. 왕조와 연월별로 찾아볼 수 있고 인명·지명·관직명·제도·이름 등 어떤 단어로도 검색이 가능해 마우스만 클릭하면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는 472년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제작사 서울시스템은 전기·중기·후기로 나눠 3장의 CD롬에 수록했던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를 고밀도의 데이터 압축기술로 1장에 수록한 특별보급판을 최근 발간했다.
「한국의 전통춤」은 화관무부터 승무·살풀이·장고춤·양반춤까지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춤을 한 장의 CD롬에 담았다. 638개 항목의 춤사위에 대한 해설과 함께 정지영상과 동영상, 내레이션 등이 곁들여진 전통춤의 멀티미디어 백과사전인 셈이다.
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서울엔 누가 살았을까. 「서울 600년사 인물편」은 서울과 관련된 주요 인물 3501명의 개인 신상 정보 및 활동상을 수록한 인물전자사전이다. 애니메이션이 포함된 시청각 자료들을 보면서 서울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
「한국의 그림」은 우리나라 회화사의 중요 작품들을 엄선해 해설과 함께 수록한 고화질의 디지털 화보집. 450여점의 정지영상과 20분 분량의 동영상, 온라인 인명사전, 용어사전이 탑재돼 있다.
몽고의 침략이 빈번했던 13세기 국난극복에 대한 고려인들의 염원이 담긴 팔만대장경도 CD롬으로 읽을 수 있다. 팔만대장경은 바닷물에 판목을 담갔다가 그늘에 말리기를 3년동안 되풀이한 후 8만장이 넘는 경판에 일일이 옻칠을 해서 5200만자의 글자를 새긴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CD롬 팔만대장경은 북한판 「팔만대장경 해제」 15권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꿔 놓은 전자책이다.
정도전부터 시작해 하륜과 이숙번·변계량의 손을 거치며 무려 57년동안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고려 475년의 역사 고려사도 전자책으로 출간됐다. 「CD롬 고려사」는 34대까지 이어진 고려왕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을뿐 아니라 외세의 끊임없는 침탈과 시련 속에서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던 고려인의 삶을 엿보게 한다.
「트레디메드(TradiMed)」는 허준의 동의보감에 현대의술을 접목한 전자책. 동의보감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을뿐 아니라 천연물 성분의 화학구조식 정보도 담고 있다. 그밖에 「고종순종실록」 「사마방목」 「문화재를 배웁시다」 등도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호흡할 수 있는 CD롬 타이틀이다.
역사책이란 왠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게임을 통해 즐겁게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한겨레정보통신이 내놓은 「왕도의 비밀」은 백제시대의 건축양식과 의복·무기를 감상할 수 있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최인호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한국적인 3D 캐릭터를 등장시킨 작품이다. 트리거소프트의 「장보고전」은 1000년 전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 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게임이다. 이밖에 HQ의 「임진록」, 트리거소프트의 「충무공전」, LG소프트의 「탈」 등도 우리의 역사와 고전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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