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청, 직제개편 유탄에 "휘청"

 중소·벤처기업 육성의 중책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청이 개청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IMF 이후 「벤처 붐」과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이라는 명분에 따라 위상과 기능이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중기청이 최근 직제개편의 「유탄」을 맞고 힘없는 외청의 한계를 드러내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96년 2월 당시 통상산업부·공업진흥청·국립공업기술원 등 중소기업 관련조직을 흡수하며 출범한 중기청은 그동안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전환과 벤처 붐으로 900여명의 방대한 조직과 수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핵심 외청 중 하나로 성장했다. 기능면에서도 자금·기술·경영·판로·인력 등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거의 모든 정책적 지원을 맡는 강력한 후원자로 위상을 높여 왔다.

 그러나 중기청은 지난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산업자원부 「실」 규모로 축소될 위기를 모면하자마자 최근 범부처 차원의 직제개편 여파로 판로지원국과 기술협력과 등 5개과가 통폐합하는 등 위기에 직면했다. 조직면에서도 50명 안팎의 인원감축이 예상되는 등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판매확대 지원사업을 주관했던 판로지원국의 철폐는 기술개발-제조-판매로 이어지는 중소·벤처기업 지원체계의 틀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최근 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자금 등 직접지원보다는 기술·교육·판매 등 간접지원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어 중기청 지원시스템상의 효율적인 운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중기청은 또 이번 직제개편에서 기술지원 체계분야에서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중소기업 기술지원의 다른 한 축이었던 국립기술품질원(NITQ)을 산자부에 내준 데다 기술협력과가 폐지되는 등 기술지원국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표준원으로 이름을 바꿔 산자부 직속으로 전진 배치된 NITQ는 연구·개발·시험·평가·품질인증·표준 등을 총괄하는 곳으로 사실상 중기청 기술지원파트의 핵심이었다는 점에서 중기청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NITQ의 이탈로 중기청의 전체 조직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됐다. 결국 판로지원국의 철폐와 국립기술품질원의 산자부 이관으로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큰 틀 두개가 흔들려 중기청의 기능과 위상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기청을 위협하는 외부 악재도 적지 않다. 우선 본가인 산자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산업정책 중에서 중소·벤처기업부문에 관해선 중기청에 거의 전권을 부여했던 산자부가 재벌이 몰락하면서 서서히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산자부가 최근 들어 산업정책의 중심을 대기업·재벌 위주에서 중소·벤처기업 쪽으로 옮기는 추세이며 신임 정덕구 장관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NITQ를 직속기관으로 끌어당긴 것도 결국 중기청의 상위부처로서 앞으로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정책 주무부처 위상을 세우기 위한 포석이 아니겠냐』는 풀이다.

 중소기업특별위원회도 중기청으로선 부담스러운 존재. 설치목적과 달리 중기특위는 아직 별다른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는 않고 있으나, 대통령 직속 장관급 기구인 중기특위 역시 기능이나 위상면에서 또하나의 중기청 견제세력으로 언제든지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기청이 비록 조직상의 타격을 받았다 해도 중소·벤처기업시대라는 시대적 조류에 맞물려 기능과 위상이 앞으로도 계속 강조될 것이란 견해도 많다. 갈수록 정부의 역할은 줄어들고 있지만 중소기업부문이 취약한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일정 기간 중기청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란 얘기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줄곧 중소·벤처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주무부처인 중기청의 기능과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그동안 중소·벤처기업에 대해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쏟은 곳은 그래도 중기청밖에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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