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팩.HP, 새 CEO 모시기 "비상"

 지금 실리콘밸리의 관심은 컴팩컴퓨터와 휴렛패커드의 차기 최고경영자(CEO)가 누가 될지에 집중돼 있다. 컴퓨터업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명성과 영향력을 가진 두 매머드급 업체의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향후 정보기술(IT)시장의 흐름 자체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커드 파이퍼 회장과 루이스 플랫 회장이 거의 같은 시기에 CEO직을 사임하거나 사임의사를 표명하면서 이 두 업체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접어드는 극적인 시기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미 몇몇 유력한 후보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내부에서 가장 임명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래리 엘리슨 회장에 이어 오라클의 제2인자인 레이 레인 사장이 컴팩이나 HP 두 회사 중 한 곳의 CEO로 옮겨갈 가능성이 많다는 소문이 업계를 휩쓸면서 기정사실화하는 듯했으나 최근 레인 사장이 오라클을 떠날 의사가 없음을 직접 밝히면서 진정되기도 했다. HP는 내년중 루이스 플랫 회장이 떠나면 지금까지의 전통에 맞게 내부인사를 발탁할지 아니면 최초로 외부에서 CEO를 영입할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들어갔다.

 이 두 업체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마땅한 인물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IT업계의 환경이 급변하고 인터넷이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인터넷 벤처기업 창업붐이 일면서 탐나는 인재들은 이미 신생업체들의 CEO로 자리를 옮겨간 상황이고 마음에 드는 인물들도 HP나 컴팩 같은 큰 변화가 없는 회사보다는 처음부터 회사를 만들어 성장과정을 직접 이끌 수 있는 신생업체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별 무리없을 정도의 적당한 인재를 찾아 앉힐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전임 CEO와 유사한 사업정책과 접근방식을 답습하는 경영자보다는 외부에서 참신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재를 끌어와 기업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자 하는 것이 이 두 업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바람이다.

 마땅히 오겠다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까다롭게 고르려다 보니 두 업체의 이사진과 양사와 계약을 맺은 헤드헌팅업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실제로 컴팩과 HP와 같은 대형업체가 CEO를 못 구해 곤란에 빠진 것은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컴팩과 HP는 90년대 초반 9개월의 간격을 두고 CEO인 로드 캐니언 회장과 존 영 회장이 각각 그만두면서 지금과 같이 CEO가 동시에 공석인 적이 있었다.

 당시 양사는 어렵지 않게 에커드 파이퍼 회장과 루이스 플랫 회장을 CEO로 임명했다. 이들은 포천 500대 기업의 CEO들이 대개 그랬듯이 경영자가 거쳐야 할 단계들을 수십년간 충실히 거친 후 CEO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또한 둘다 회사가 이전까지 추구해온 사업방향에 익숙해 있어 회사를 안정되게 이끌 수 있다는 점이 CEO로 임명된 주된 요인이기도 했다.

 특히 플랫 회장은 CEO에 임명되기 전 전체 직장생활 기간 26년을 HP에서 근무하면서 전임자인 존 영 회장과 매우 유사한 사업방식을 지녔다는 점 때문에 후보자들 중 가장 적임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전임자와 똑같은 CEO는 필요없다는 게 양사의 공통적인 입장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인터넷시대를 능동적으로 이끌 만한 인재, 물건만 만들기보다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재, 온라인판매 등 새로운 유통체계를 활용하는 능력이 있는 인재, 변화에 대한 바람과 현실인식을 함께 갖춘 21세기형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상황이 좋았던 때도 이런 자격조건을 갖춘 인물을 찾기는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올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헤드헌팅업체들의 반응이다.

 최근 몇 년간 인터넷 창업붐으로 CEO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규모는 작지만 재정이 탄탄한 인터넷회사들로 유망한 인재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컴팩과 계약을 맺고 있는 헤드헌팅업체 하이드릭&스트러글스의 존 톰슨 부사장은 지난해 미국 내에서만 750∼800명의 CEO 수요가 있었으나 약 150명의 공급부족 현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사는 길지 않은 후보명단을 만들고 인재영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별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리스트에 포함된 인물이 거의 같다 보니 상황은 더 어렵다.

 IBM의 샘 팰미사노, 인텔의 폴 오텔리니,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에드 잰더, 오라클의 레이 레인 등이 유력하게 거명되고 있고 노벨의 에릭 슈미트, SGI의 릭 벨루조,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렉 머페이 등도 주목받고 있다. HP의 앤 리버모어와 컴팩의 존 로즈 등은 내부인사 중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덩치만 큰 컴팩이나 HP보다 규모는 작지만 기업공개를 통해 한번에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일 수도 있고 이제 막 출발선상에 있는 인터넷시장의 창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신생 인터넷업체로 옮겨가길 원하고 있어 이들의 CEO 영입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번 신생업체의 CEO로 옮겨가면 스톡옵션제도의 제한 때문에 몇년간은 회사를 떠날 수 없어 이들 인재를 원해도 끌어올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한편 이러한 CEO에 대한 수요와 공급간의 불균형은 새로운 CEO 영입을 추진하는 업체에는 곤란을 주겠지만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로의 인력집중 현상은 당분간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안경애기자 ka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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