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위성방송 정책인가.
국내 업체들이 「통합방송법」에 발목을 잡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국내 위성방송 시장은 외국 사업자나 국내법에 저촉받지 않는 외국 위성을 이용한 사업자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수년째 지연됨에 따라 국내 위성방송사업 후보들의 의욕도 크게 꺾여 이제는 한국통신과 DSM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사실상 사업을 포기한 상태다. 물론 일부 지상파방송사와 케이블TV가 내심 관심을 비치기도 하지만 아직 눈치보는 단계에 그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스타TV나 NHK 등 외국 위성방송들이 안방을 선점, 문화를 등에 업은 상업공세를 취해온 데 이어 최근 들어서는 외국 위성을 이용, 국내 시장을 겨냥해 위성방송사업을 펼치려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일본에 본사를 둔 동양위성방송(OSB)이 미국의 팬암 2호 위성을 이용해 우리나라와 일본·중국 등을 대상으로 위성방송을 송출, 호응을 얻자 미국 교포들이 주축이 된 것으로 알려진 하나로위성방송·한미위성방송 등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외국의 위성체를 이용한 위성방송 사업에 들어갔거나 계획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해외 진출 국내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를 중계하는 등 다양한 전략으로 뿌리내리기에 성공, 지금은 종합 및 홈쇼핑 채널까지 운용하며 점차 사업영역과 서비스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이들이 국내 위성방송 시장을 선점, 정부와 국회만을 바라보며 준비에 준비만을 거듭하고 있는 국내 사업자들이 발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케이블TV 외국어 채널인 아리랑TV 역시 국내 위성방송 관계법 제정이 계속 지연됨에 따라 방침을 바꿔 우선 홍콩의 아시아샛 3호기를 이용해 6월부터 디지털 위성방송 시험서비스를 시작하고 8월부터 해외 교포들을 대상으로 본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통신채널을 이용한 이른바 「유사위성방송」 서비스도 대거 등장할 태세다. 이미 병원방송과 모 종교방송 등이 통신채널을 이용해 위성방송을 송출하고 있고, 취미·여가 등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이와 유사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반해 현재 국내에서 위성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OUN·KBS·EBS 등은 실제 방송은 내보내고 있으나 법적인 위성방송사업자의 지위는 얻지 못하고 있고, 자연히 이들의 위성방송 서비스도 「시험」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인 문제와 참여제한 논란, 케이블 등 기존 사업자들과의 이해관계 등으로 우리나라 위성방송 정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세계 위성방송의 기술적·사업적 환경은 계속 변화, 지금은 그야말로 「국경을 넘나드는」이 아닌 「국경이 없는」 매체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대응은 힘을 실어줄 수는 있지만 속도가 더딘 탓에 자칫 뒷북만 치는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많다는 것은 과거 익히 보아왔다. 또한 명분과 원칙이 시장에까지 먹히는 게 아니라는 것 역시 케이블TV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이미 외국 사업자나 외국 위성을 이용한 사업자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우리 시장에서 활개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수년째 시간을 끌어가며 공들여 만드는 국내 위성관련 제도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까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통신부가 지난 3월 위성방송 준비기업·연구기관·학계 전문가들로 「위성방송 도입 준비반」을 구성, 위성방송 도입과 관련한 세부내용을 6월까지 확정하겠다고 나선 것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비록 역할과 영역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합방송법 및 관련법령을 제정·정비하고, 방송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위성방송 도입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경우 실제 허가시기가 상당히 지연되지 않겠느냐』는 업계의 다급한 심정을 헤아려주는 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간의 업무영역이나 역할을 조정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국내 업체들이 외국 사업자 못지 않게 자유롭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조기에 길을 터주는 일이다.』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상실한 뒤 제도를 정비해 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정부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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