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훗날 나의 아내가 됐지만, 아내가 됐다고 해서 내 것인 것은 아니었다. 마누라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것처럼 바보는 없을 것이다. 마누라처럼 다루기 힘든 여자는 없는 것이다. 마누라와는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법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파랗게 젊은 내가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부질없고 거만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 이유는 돈과 시간 때문이었다. 돈이 있으면 책을 사서 읽어야 했고,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를 다닐 초기에 도시락을 들고 찾아온 다희와 헤어지면서 결심했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송혜련에 대한 열정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 부대에서 취침 점호가 끝나고 밤이 깊어지면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혜련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했다. 분명히 컴퓨터에 대해서 물어올 것이지만, 가급적 그런 이야기보다 다른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컴퓨터는 설명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그런데 나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른다. 백화점의 문 사장처럼 같은 곡의 음반이 여러 개 있고, 그것은 지휘자가 다르고 오케스트라가 다르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는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 음악이라도 스피커를 바꿔서 들을 정도가 되어야 음악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군대 이야기를 할까. 그녀의 오빠가 그 이야기는 많이 해줄 것이니까 그 점에 있어서도 흥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을 이야기할까. 내가 읽은 소설이나 시는 국한돼 있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알 수 없고, 한때 탐정소설을 읽었지만, 살인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해서 별로 아름다운 대화는 아닐 것이다. 미술을 말한다면 서양의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논해야 될 것이다. 아니면 한국의 현대 화가들로서 일정한 성과를 올린 이중섭이나 김기창을 말할까. 그러나 내가 그들의 그림을 몇 점이나 봤는지 기억에도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상당히 무식하다는 점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열심히 읽은 책이 모두 컴퓨터 서적이었다는 점이 후회됐다. 하지만, 어떤 지식의 교류를 목적으로 만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가까이 느끼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 샤워를 했다. 몸의 냄새를 벗기고 그녀 앞에 산뜻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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