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49)

 『내일이 일요일 맞아예.』

 여자가 대답하면서 통장을 정리했다.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시간이 있으면 그냥 들리이소오. 이렇게 안해도 괜찮아예.』

 돈을 넣었다 빼었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웃집 마당에서 사과를 훔치다가 들킨 사람처럼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다. 필요해서 찾고, 돈이 남아서 입금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돈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것을 아는지 알 수 없었다. 훗날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까, 그것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좀 이상해서 돈을 주면서 일련번호를 메모해 뒀는데, 다음에 와서 입금되는 돈을 보니까 바로 같은 지폐였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자기를 보려고 일부러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무엇인가 조작된 짓거리이기는 하지만 악의적인 것이 전혀 없었고, 약간 서툴기는 하지만, 그렇게 싫지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내일….』

 『뭐라고예?』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나면서 나를 쳐다봤다.

 『내일 시간 있으면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준비했던 말인가. 내가 두려운 것은 그런 청을 했을 때 그녀가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였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 싫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를 쳐다보면서 방글방글 웃는 표정에서 그런 제의를 해도 거절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예, 내일 할 일은 없어예. 어디로 나갈까예?』

 『이 옆에 제과점이 있죠? 오전 열시쯤 거기서….』

 『예, 그라예. 열시예?』

 『네, 열시요.』

 『예, 그라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시라는 말을 되새겼다. 얼마나 기다렸던 말인가. 그녀의 표정도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멈칫하다가 일만오천원을 더 찾았다. 내일 있을 데이트 자금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속이 너무나 뚜렷하게 들여다 보였던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은행을 나와서 한길로 나섰을 때 나는 껑충 뛰면서 두 팔을 휘저었다. 해내고야 말았다. 마치 그녀를 정복이라도 한 것 같이 통쾌하고 즐거웠다. 물론, 여자를 정복한다는 것이 본질적인 성취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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