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료 재협상을 앞두고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이 RCA의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무효심판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공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은 RCA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자총 외 3건의 특허에 대해 무효심판을 특허청 심판위원회에 제기해 놓고 있는 것. 통상 특허료 협상에서 저자세를 보여왔던 브라운관업체들이 특허료를 낮추기 위해 이번과 같은 강공책을 사용하고 나선 일은 처음이다.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이 재협상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처지를 배제할 수 없는데도 이같은 강공책을 쓰는 것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앉아서 RCA 측에 지불해왔던 특허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브라운관 3사가 RCA에 지불해왔던 특허료는 지난 94년 3월부터 99년 2월까지 5년 동안 1000억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에 200억원씩의 특허료를 지불해왔는데 이는 지난해 국내 업체들이 브라운관에서 거둔 경상이익의 6∼7%선에 이르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업체들은 힘들여 브라운관을 생산, 판매해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RCA 측에 좋은 일을 시켜준 셈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RCA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은 앞으로 5년 동안 1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특허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브라운관 가격 폭락으로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같은 특허료 지불은 상당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브라운관업체들은 특허료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특허료 지불기간 만료로 재협상에 들어가는 시점을 택해 강공책을 구사한 것이다.
브라운관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격 폭락으로 브라운관의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된 가운데 RCA사에 연간 200억원의 특허료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 무리라고 판단, 우선 브라운관업체들이 공동으로 RCA사가 보유한 특허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의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일본을 제치고 브라운관시장에서 세계 제1위의 생산국으로 성장하면서 독자적인 브라운관의 제조기술을 갖춘 것으로 내심 자신해 이번에 특허무효심판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특허료를 낮추기 위한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의 이러한 시도 자체는 RCA 측과의 특허료 재협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 RCA 측이 톰슨사와의 합병으로 인해 국내 업체들과의 특허료 재협상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재협상 테이블에서 예전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우리보다 한발 앞서 일본 브라운관 생산업체들과 재협상에서 예전의 조건대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우리도 재협상에서 예전보다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으로 국내 브라운관업체들이 더 이상 잃을 것은 없어 무효심판소송의 판정결과에 따라 재협상 내용도 그만큼 달라지게 됐다.
국내 업체들이 승소하게 되면 그만큼 특허료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격 폭락으로 악화된 수익성의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RCA 측이 한국내 판정에 불복, 미국법정으로 옮길 경우 오히려 특허료를 둘러싼 협상기간은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다.
브라운관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특허심판무효소송의 결과에 따라 미국 법정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특허료를 낮추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원철린기자 cr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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