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비자보호 시책에 바란다

 최근 정부가 마련한 올해 소비자보호시책과 소비자피해 보상규정안은 한마디로 정보화 확산 추세에 적극 부응하고 나아가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장기적으로 볼 때 옳은 방향설정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 안으로 전기용품안전관리법령을 개정,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전기용품에 대해서는 기존 수거·파기명령 외에 교환·환불·수리 등의 명령권을 추가하고 전기용품 안전기준체계도 국제규격으로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또 전자상거래에서 자율적 소비자보호를 유도하기 위해 소비자보호지침을 제정, 관련업체에 보급하며 소비자 개인정보의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보호 시행지침과 무선통신 표준약관 등을 제정·보급키로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세부적인 시행내용에 있어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정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소비자단체 등이 휴대폰의 감도·소비자만족도·요금수준 등을 평가해 발표토록 하는 정보통신서비스 품질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앞으로는 유·무선전화, 무선호출, PC통신 등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평가방법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다양한 방법의 정보통신기기를 일정한 장소에서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 제조물책임법(PL법)의 도입과 가전제품에 대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의 제한이다. 정부는 각종 공산품에 하자가 발생해 소비자들에게 생명·신체적 피해를 끼쳤을 경우 보상토록 하는 PL법안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 통과시키되 시행시기는 1∼2년 후로 잡고 있는 것 같다.

 PL법안의 시행시기를 이처럼 늦추겠다는 것은 그동안 공청회 등의 여론수렴 과정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점을 적극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IMF체제 상황하에서 PL법을 도입하기로 확정하고 법안을 마련할 경우 이에 따른 심리적인 부담이나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PL법은 소송비·배상비·보험료 등 사후비용은 물론 적잖은 사전 준비비용을 수반해 중소기업, 특히 벤처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기업경영이나 기술개발 활동을 급격히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이는 정부의 벤처기업 집중육성정책에도 배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국내 업체들이 이를 시행할 준비도 전혀 안된 만큼 현 제도를 보완, 강화하는 선에서 소비자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자산업과 같은 첨단산업의 경우 대외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PL법의 도입은 최소한 5년 정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밖에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의 제한조치다. 이 문제는 본란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가전제품에 대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규제할 경우 소비자보호는 물론 물가안정이나 산업보호 측면에서 오히려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현행의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제도가 대리점 등 소매점간의 선의의 가격경쟁을 제한하고 또 실제 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권장소비자가격은 소비자들에게 할인판매하는 것처럼 현혹시키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 가격표시제도는 소비자들에게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유통업체의 폭리를 방지하며 나아가 물가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 시중에선 똑같은 제품이라고 해도 판매수량과 대금지불조건, 납품시기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며 여기에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 또는 재질·용도 등에 따라서도 엄청난 가격차이가 있다.

 만일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획일적으로 규제할 경우 유통업자의 마진이 크게 다양해지고 소비자들의 제품 구입가격도 천차만별이 될 것이며 대도시와 농어촌·산간벽지 등에서의 가격차이는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다. 특히 소형 가전제품과 같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 크게 의존해 온 중소 가전업계는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며 이는 곧 국내 가전업계의 내수기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전면 금지하는 것보다 단위가격표시제 도입 등 가격표시제 자체를 보완함으로써 소매단계에서의 가격경쟁 촉진 및 물가안정을 도모해 나가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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