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트(대표 이영태)는 LG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안정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올해 초 설립한 벤처기업. 영상과 정보기술의 통합을 시도하고자 문을 연 이 회사는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단계지만 창업에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춘 가장 모범적인 벤처기업이란 점에서 먼저 관심을 끈다.
이 회사는 우선 이영태 사장(35)을 비롯한 5명의 창업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LG중앙연구소에서 개발했던 기술을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했기 때문에 창업과 동시에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음으로써 관련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또 회사 경영측면에서도 LG전자로부터 창업자금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폭적으로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창업에 따른 위험부담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문서인식시스템. 단 한 가지 분야지만 그 수요는 IMF 이후 대부분의 설비투자가 「빙하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LG카드 등 신용카드 회사들은 한달에 5백∼1천만장에 달하는 지로용지 확인작업을 위해 1백여명의 여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문서인식시스템을 사용하면 이러한 작업을 대부분 전산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LGEDS와 삼성SDS 등 시스템통합 업체들 사이에서 이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문서인식시스템의 특징으로는 2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서식을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겨진 전표 등 관리상태가 상당히 나쁜 문서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문서인식시스템은 흔히 일반용과 시스템용의 두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일반용 제품은 기업체나 도서관에서 보관하는 문서를 광파일에 담을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인쇄한 문서, 그것도 화질의 상태가 비교적 선명한 문서(3백dpi 이상)가 아니면 인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이니트가 개발한 문서인식시스템은 카드회사 또는 은행과 같은 금융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시스템용 제품으로 대중음식점 등에서 발행한 전표의 필적, 그것도 관리상태가 지극히 나쁜 문서(1백50∼2백dpi 수준)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작업량도 한달에 적게는 수 백만장에서 많으면 수 천만장의 전표 또는 지로용지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표인식의 경우 휘갈겨 쓴 필적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운 분야다.
그러면 신생 벤처기업에 불과한 이니트가 어떻게 이처럼 우수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우선 이영태 사장의 개인적인 이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북대에서 전자과 석사과정을 마친 이 사장은 지난 89년 LG중앙연구소에 입사하면서부터 올해 초 독립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오로지 문서인식 한 분야 연구에만 매달렸다.
행운이 찾아온 것은 지난 97년 말. 당시 LG그룹이 대대적인 사내 창업 프로그램을 시행할 때 낸 제안서가 당당히 「LG중앙연구소 벤처 1호」로 채택됐다. 이 사장은 그때부터 1년 동안 LG측으로부터 연구실은 물론 직원 인건비까지 전액 지원받는 행운을 차지했다. 오직 연구실만 지켰던 엔지니어에게 주는 보상으로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뛰어난 기술력에 안정적인 운영자금까지 확보한 이니트에는 최근 LG창업투자·신도창업투자 등으로부터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제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사양하고 있는 형편이다. 회사 규모를 더 키운 후에나 고려해 보겠다고 밝히는 이 사장의 얼굴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묻어 나왔다. 이 회사는 큰 욕심 내지 않고 올해 10억원, 그리고 대망의 2000년에는 28억원의 매출목표를 각각 설정해놓고 이를 위해 오늘도 분주히 하루를 보낸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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