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업체들에 있어서 TV시장은 넘어야 할 벽으로 남아 있었다. 업체들은 TFT LCD의 영역을 노트북시장에 이어 모니터시장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모니터용 TFT LCD의 시장규모는 1백만개로 전체 모니터시장의 1% 수준을 넘어섰다. 이로써 업체들은 모니터시장의 주력 디스플레이인 CRT의 한쪽 모서리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TFT LCD는 CRT를 밀어내고 디스플레이의 왕좌를 차지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모니터시장과 함께 디스플레이시장의 양날개를 이루고 있는 TV시장을 넘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컬러TV의 세계 시장규모는 1억2천만대로 모니터시장을 웃돌고 있다. 특히 디지털방송시대 개막으로 2000년 이후에는 아날로그의 컬러TV가 디지털TV로 대체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시장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향후 디스플레이의 역학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시장전망이 좋은 TV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해야 TFT LCD는 명실상부하게 CRT를 대체하면서 21세기의 대표적인 디스플레이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TV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려는 TFT LCD업체들의 몸부림이 시작됐다.
이미 일본 업체들은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우리 업체들보다 한발 앞서 일본 샤프사를 비롯해 마쓰시타와 NEC·소니 등은 AV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20인치 이상의 TFT LCD 액정화면을 TV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업체들의 움직임을 쫓아 삼성전자와 LGLCD도 고화질 디지털TV방송의 상용화에 대응, TFT LCD의 영역을 TV로까지 확대키로 하고 CRT와 PDP의 틈새시장인 30∼40인치 시장을 집중 공략할 계획을 세우고 제품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과는 달리 TFT LCD가 CRT보다 무게가 가볍고 공간을 적게 차지해 벽걸이TV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TFT LCD의 영역을 TV로 확대하기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먼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30인치 TFT LCD를 3만달러에 수출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같은 가격대로는 TV시장을 넘겨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PDP가 목표로 하고 있는 인치당 10만원대는 달성해야만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한가지는 30인치 이상의 제품을 생산할 경우 생산수율을 높일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국내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3.5세대 라인에서 30인치 제품이 1개밖에 생산되지 않는 등 수율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디지털TV 이후 주력제품으로 등장하는 30∼40인치 TV에 적합한 TFT LCD를 생산하기 위해선 별도의 생산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때 반도체 설비투자에 버금가는 투자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업체들의 설비투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TFT LCD가 안고 있는 광시야각의 한계와 응답속도가 CRT보다 뒤떨어지는 약점을 해결해야 한다.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조사기관들의 전문가 대부분은 한결같이 이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TV로 확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모니터시장에서도 한국과 대만 업체들이 발빠르게 쫓아오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 업체들은 자신들의 설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TV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어 오히려 TFT LCD의 영역확대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있다.
어쨌든 21세기 디스플레이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TFT LCD업체들의 움직임은 빨라질 것으로 보여 디지털TV의 디스플레이를 놓고 CRT와 PDP, TFT LCD업체의 승부는 치열해질 전망이다.
<원철린기자 cr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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