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산업은 지난 1919년 연쇄극 「의리적 구투」(제작 박승필, 제작비 5천원)로 씨앗을 뿌렸고, 23∼35년 사이 흑백무성영화를 통해 싹을 틔웠다. 당시 영화제작사 및 프로덕션 수는 50여개, 작품수는 80여편이었다. 23∼44년까지 총 1백53편의 무성영화가 제작돼 영화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전쟁의 포화가 걷힌 54년부터 59년까지의 기간은 영화산업이 도약한 시기였다. 54년 18편, 55년 15편, 56년 30편, 57년 37편, 58년 74편, 59년 1백11편 등 제작편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장르와 소재가 다양화했다.
60년대는 국내 영화산업 최고의 황금기였다. 연간 평균 제작편수가 2백여편을 넘어서면서 1천5백여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국민 1인당 연간평균 4.6편을 관람했다. 62년 1월에는 한국영화 보호육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영화법이 제정, 공포돼 영화가 문화산업의 주력상품으로 떠올랐다.
70년대에는 TV 전국보급과 유신정권의 가혹한 영화검열 등의 영향으로 영화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한해 평균 1백1편 정도가 제작돼 총 1천3백29편이 상영됐다.
80년대 들어서는 컬러TV가 보급되고 미국 영화산업계가 한국에 진출(88년)하면서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8백86편으로 떨어졌다. 당시 한국판 할리우드인 「충무로영화」가 발아, 소자본 상업영화 제작이 본격화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내에 VCR가 보급되기 시작해 비디오(프로테이프)산업이 「70년대말∼81년 여명기→82, 83년 과도기→84∼88년 성장기→89∼91년 도약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디오산업의 태동으로 영화 관람문화 및 수익구조도 크게 달라졌다.
90년대에는 국제사회 정보교류수단이 급격하게 발달함에 따라 영상물 이용방법과 가치가 다양화됐다. 로맨틱코미디로 대변되는 가벼운 내용의 한국영화들이 흥행했고, 컴퓨터를 이용한 특수효과와 애니메이션기법 등 새로운 영상기법들이 속속 등장했다. 특히 영상산업 육성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애니메이션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그 결과 「블루시걸」(94년), 「소나기」(95년), 「아마게돈」(96년), 「붉은 매」(96년), 「돌아온 홍길동」(96년), 「헝그리베스트5」(96년)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됐고, 최근에는 3차원 그래픽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이 잇따르고 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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