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다국적기업 성장사

 전자산업에서 다국적 기업의 한국진출이 이뤄진 것은 지난 62년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66년)의 일환으로 외자유치에 적극 나선 때와 맞물린다. 말하자면 한국의 경제개발이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할 때부터 다국적 기업은 그 궤적을 밟아온 것이다.

 본지가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98년 5월 현재까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자산업 분야 다국적 기업들은 모두 1백22개사(서비스분야 제외)다.

 컴퓨터 관련 45개사, 부품 및 반도체 34개사, 정보통신 16개사, 가전 3개사 등이다.

 이들이 97∼98회계연도에 국내에서 올린 매출실적은 모두 1조6천8백억원으로 이는 전자정보통신 분야를 포함한 국내 제조업 총생산액 29조9천5백억원의 5.6%에 해당하며 97년 국민총생산액에서도 1.54%를 차지하는 규모다. 그만큼 다국적 기업이 국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는 얘기다.

 이들 다국적 기업은 기업이윤의 해외유출, 경제 식민지화, 외국자본의 국내 침투라는 부정적 시각과 기술이전 회피 등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국내 전자산업의 발전, 즉 시장확대나 기술향상 측면에 볼 때 적잖은 기여를 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 맹아기에 있던 국내 PC산업은 외국업체들의 기술방향 제시와 수요창출 노력으로 본격 개화하면서 96년까지 일본에 이어 아시아 지역 2위의 시장규모로 성장했다.

 또 이들의 앞선 기술력이나 마케팅은 국내 전자업체들의 경쟁력향상에 촉진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즉 선진적인 경영기법이나 노하우 등이 국내법인을 통해 구현됨으로써 국내기업들에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90년대 들어 다국적 기업들은 경영방식에 일대 혁신적인 바람을 일으키면서 불도저식 판매확대에 따른 이윤추구보다는 현지실정에 맞는 경영전략과 기업이윤의 재투자 및 사회환원, 고용창출 등 한국경제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새로운 위상정립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PC 운용체계(OS)의 한글화뿐 아니라 수백개의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업체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국내 실정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솔루션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나 IBM·인텔·휴렛패커드가 국내 투자와 협력업체들로부터 부품구매를 늘리고 있는 것 등이 좋은 예다.

 다국적 기업들의 이같은 활동이 기업이윤 추구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한국 전자산업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컴퓨터의 핵심인 마이크로프로세서와 OS,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데이터 웨어하우스,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 등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CDMA와 같은 핵심 통신기술, 네트워크 장비 등 국내 컴퓨터·정보통신산업에서 차지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비중이 막대한 만큼 이들에 대한 지나친 기술의존으로 국내기업들이 경쟁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되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벤처기업들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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