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영사업단이 마침내 해체된다. 삼성그룹의 영상사업을 전담해온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는 마지막 남은 영상업계 대기업의 퇴출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각 산업에 진출, 불패의 신화를 이끌어 왔던 삼성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자동차에 이어 또 하나의 「치욕」을 남긴 셈이다.
대기업 영상사업 퇴출은 결론적으로 의욕만 앞세운 경영부실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산업의 패러다임을 읽고 나래를 펴려 했으나 복잡한 영상산업계의 제작공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높다. 제조산업의 원가산정에 익숙한 대기업들이 원가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소프트웨어 산업, 특히나 모험적인 영상산업계에 진출한 것은 애시당초부터 잘못됐고 결과로도 입증됐다는 것이다. 현대·삼성·대우·LG·SK 등 5대 그룹이 앞다퉈 참여했으나 하나같이 주저앉고만 것은 하드웨어적 마인드를 바꾸지 않은 채 옷만 수려하게 소프트웨어적으로 차려입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라는 기치 아래 경쟁적으로 벌였던 외국영화사와의 협력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은 미국의 준메이저사인 뉴리젠시와 대우는 뉴라인영화사와 각각 작품수급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원소스 멀티유즈를 실현했다고 떠벌렸지만 실은 외화판권 확보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과의 계약은 IMF한파와 함께 자신의 목을 죄는 자승자박의 형국으로 작용했으며 특히 삼성은 뉴리젠시에 무려 6천만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물불을 가리지않고 참여한 영화제작사업도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외양만 바라보고 투자에 나섬으로써 경영부실을 자초했다. 특히 영화판권만을 바라보고 제작비를 마구 동원한 것은 투자가치를 스스로 폄하한 것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영화속의 주인공 캐릭터와 음악·의상 등을 상품화할 생각없이 영화판권 확보에만 열을 올림으로써 자신들의 역할을 한낱 지방영화흥행사 정도에 묶어버렸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의 음반사업은 기획사의 배만 불리는 「기형」사업 중 하나였다. 지난해 발매된 서태지 앨범에 삼성은 무려 20억원을 투자했다. 마케팅·홍보비를 보태면 규모가 더 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측은 이 앨범이 1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실제로는 훨씬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고와 유통마진 등을 고려하면 적자를 면치 못했을 것이란 것이다. 그나마 이같은 결과는 다행스러운 결과라는 것. 음반제작을 위해 대기업이 지급하는 선지급금이 기획사의 목돈이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로 통했다.
경영부실과 함께 정부의 정책실수도 대기업들의 경영부담을 가중시켰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프로그램공급사업자(PP)를 우리정부는 무려 29개 업체나 지정했다. PP들의 경쟁을 통해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방침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참여업체의 경상수지만 악화시킨 꼴이 됐다. 결론적으로 대기업들의 과열된 경쟁이 경영부실을 불러왔고 정부의 정책실수와 영상사업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작금의 대기업 퇴출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영상산업에 기여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오늘날의 우리나라 영화가 관객을 되찾은 것은 대기업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부인키 어렵다. 또 소프트웨어 제작공정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선진형의 마케팅을 적극 도입한 것 등은 대기업들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읽고도 잇단 퇴출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경직된 사고와 비대한 조직을 과감하게 효율적으로 슬림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모인기자 inm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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