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개혁위원회(위원장 강원용)가 중계유선이나 케이블TV 방송사들이 그동안 정부 당국의 묵인하에 무단 송출해온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 행위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킬 전망이다.
현재도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지는 않다. 다만 정통부나 문화부 등 관련부처가 중계유선·케이블TV 사업자들의 외국 위성방송 재전송 행위를 묵인하면서 외국 위성방송의 국내시장 침투가 날로 심화되는 상황이다.
이번에 방개위 실행위원들이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 행위를 금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은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 행위를 공식 허용할 경우 외국의 위성방송사업자들과 국내의 중계유선·케이블TV 사업자나 한국정부와 저작권 분쟁의 소지가 있는 데다 외국의 위성을 임차해 국내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외국 위성방송사업자들이 양산되는 것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방송개혁위원회가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 금지 방침을 확정하고 앞으로 출범하는 통합 방송위원회에서 「위원회 규칙」 등을 통해 구체적인 재전송 금지 윈칙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방송시장 환경에서 무조건적인 재전송 금지가 합당한 원칙인가 하는 점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일단 현재로선 일반인들이 위성방송 안테나를 설치해 외국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것까지 규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의 중계유선·케이블TV 사업자들의 사적인 계약이나 정상적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외국 위성방송을 재전송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은 좀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 방송계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게다가 프로그램공급사(PP) 등록제 아래서 국내 PP가 외국의 위성을 임차해 방송을 내보낼 경우 SO와 중계유선이 이를 재전송하는 것까지 외국 위성방송 재전송 금지에 포함시켜 전면 금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연세대 최양수 교수는 지난주 방개위 1차 공청회에서 『유료 채널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외국 위성방송은 국내 재전송을 공식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 관심을 끌었다. 현재 수백만명이 외국 위성방송에 노출돼 있는데 이를 물리적으로 계속 막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거대한 암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외국 위성방송을 공식적인 장으로 끌어내자는 논리다.
이화여대 유의선 교수 역시 29∼30일 이틀 동안 MBC와 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실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 문제는 국내 방송정책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다. 최근 KRC리서치 인터내셔날사가 우리나라 성인 남녀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48%가 CNN·NHK·스타TV·CCTV 등 외국 위성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으며 실제 위성방송의 시청률은 전국 가구의 22.9%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위성방송의 수신 경로는 중계유선(52.8%), 케이블TV(23.0%), 공시청 안테나(18.1%) 순으로 나타났다. 개별적으로 안테나를 설치하는 경우는 2.0%에 불과했다. 상업적인 매체에 의해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경우가 무려 75.8%에 달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 상업적인 매체가 계속 외국 위성방송을 무단으로 재전송할 경우 저작권 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 위성방송사업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국내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매체에 노출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방개위측이 재전송을 금지하려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 부합하지 않는다. 비록 외국 위성방송의 재전송을 금지하더라도 각론 부분에선 사안에 따라 폭넓게 허용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방송계의 시각이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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