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43);용갈이 현상

 영하 10도 안팎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 강이나 호수도 꽁꽁 얼어붙는다. 그런데 이런 빙판들이 밤새 부서져서 다음날 보면 삐죽삐죽 솟아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에는 마치 거대한 공룡이 지나간 것처럼 솟아 있는 얼음이 일정한 궤적을 따라 죽 이어져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이런 현상을 「용갈이」, 또는 「용경(龍耕)」이라고 불렀다. 마치 용이 밭을 갈듯이 얼음판을 갈아놓은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좀더 토속적인 표현으로 「도깨비가 건너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용갈이」 현상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강이나 호수, 또는 큰 저수지는 꽁꽁 얼어붙으면 사실상 한 덩어리의 얼음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계속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더라도 낮과 밤은 기온 차가 있기 때문에 밤새 기온이 더 내려가면 거대한 얼음덩이도 부피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얼음이 약한 곳은 부서져 갈라진다.

 그러나 얼음이 갈라져 물이 드러난 곳도 이내 추운 날씨 때문에 얼어버리는데 이 부분의 얼음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낮이 되어 다시 기온이 올라가면 또 부서진다. 거대한 얼음덩이들의 부피가 늘어나면서 갈라진 틈새의 얼음이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것이다.

 강이나 저수지의 얼음이 얼 때는 가장자리에서부터 차츰차츰 안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 약한 부분을 따라서 「용갈이」 현상이 일어난 것을 보고 옛 사람들이 「용이 갈아엎었다」 「도깨비가 지나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19세기초 조선 순조 임금 때의 학자인 도애 홍석모는 「동국세시기」라는 민속 해설서를 남겼는데 이 책에 보면 「용갈이」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충남 홍성군에는 합덕지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겨울만 되면 마치 용이 얼음판 위를 갈아놓은 것 같은 이상한 자국이 생기곤 했다.

 사람들은 이 용의 밭갈이 자국이 남북 방향이면 이듬해는 풍년이 들고, 만약 동서로 나 있으면 흉년이 된다고 믿었다 한다.

 또 방향이 일정하지 않으면 그저 평년작에 그칠 조짐이라고도 해석했다.」

 이러한 용갈이 현상은 또 경북 함창, 경남 밀양, 황해도 연안(지금의 연백군 지역) 등지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TV에서 극지의 빙산을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이따금 얼음이 큰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현상도 결국은 기온 차이로 인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용갈이와 마찬가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극지 가까이에 있던 빙하들이 위도가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오면 기온이 올라가서 부서져 떨어지면서 빙산이 되는 것이다.

 「용갈이」라는 말도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거대한 괴물을 일컫는 우리 민족 고유의 말로 「용가리」가 있는데 이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바로 「용갈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이미 67년에 「대괴수 용가리」라는 영화가 제작된 바 있고 올해는 개그맨 심형래씨가 다시 「용가리 1999」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배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 나라의 용이 이제 겨울에 얼음판만 가는 게 아니라 세계 문화시장도 갈아엎어볼 참인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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