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88)

 『나는 학생 신분으로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고 돈을 물쓰듯이 썼어요. 재벌의 돈이기에 나 개인이 쓰는 것은 아무리 써도 표시가 안 났어요. 그는 나에게 소형 비행기조차 사주려고 했으니 당시 나에게 완전히 미친 셈이지요. 그런데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또 둘째아이가 임신이 된 거예요. 조심을 했는데도 그렇게 됐어요.

 그때 나는 생각을 달리 먹었어요. 김 회장에게 이혼을 하라고 했죠. 아무 애정 없이 형식적으로 당신 아내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여자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했죠. 김 회장은 내 말대로 했어요. 그 부인에게 위자료로 호텔과 백화점 하나를 넘겼더군요. 같이 있는 건물이었어요. 두 아들은 이미 성장해 미국에 유학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 없고 지금 최 선생님이 가르치는 딸 용희만 문제였죠. 그 아이는 열살 전후로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보내려고 했지만 아이 엄마가 안 맡으려고 했어요. 유산문제 때문에 합의가 안된 것 같았어요.

 나는 유학 6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와서 그때 막 생긴 컴퓨터 학과에 교수로 가려 했지만 마침 KIST의 성기수 박사가 나를 스카우트해서 컴퓨터 연구원으로 KIST에 들어간 거예요. 우리 두 아이는 어렸을 때 엄마하고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데 용희는…… 너무 못하죠?』

 그녀는 말을 마치고 한동안 침묵했다. 실제 그녀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 아닌 듯했다. 한참 침묵하고 나서 그녀는 빈 커피잔을 만지다가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미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귀국해서 살림을 차리고 대 사업가와 결혼생활을 해보니 사업가의 아내라는 것이 외로운 신세였어요. 그 돌파구로 같이 기업체를 맡아 정신없이 뛰지요. 나는 컴퓨터 연구원으로 열심히 뛰고 있지만 그래도 외로움은 어쩔 수 없어요. 나이 차이가 많은 사업가와의 결혼이 나를 이렇게 외롭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어떻든, 나는 김 회장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홍 박사님,』

 나는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언제나 홍 박사라고 호칭했다.

 『그렇다면 감정을 절제하시는 것도 김 회장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가요? 그것이 희생일지라도 말입니다. 사랑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희생이라는 말도 있어요.』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마도 수영장에서의 일을 힐난하는 것으로 듣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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