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의 진부함을 상큼한 연기와 매력적인 영화구조로 요리해낸 이정향 감독의 데뷔작.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기도 한 「미술관 옆 동물원」은 여러가지로 칭찬받을 만한 우리영화다.
우선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강점은 영화적인 감각과 디테일이 훌륭하게 살아날 수 있었던 시나리오와 주인공을 맡은 심은하의 연기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과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심은하의 연기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선택이다. 감독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영화속 주인공들이 현실과 상상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유쾌하고 따뜻하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상업적 코드를 떠안으면서도 보기 드물게 새롭고 신선한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해나가는 데 성공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결혼식 비디오 촬영기사로 일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춘희(심은하 분)의 방에 어느 날 철수(이성재 분)가 들이닥친다. 그는 여느 때처럼 말년 휴가를 애인인 다혜(송선미 분)와 즐기기 위해 그녀의 방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다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이미 그 방을 떠나간 상태. 철수는 떠나간 다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춘희의 방에 눌러앉게 되고 본의 아니게 춘희의 생활을 엿보게 된다. 춘희는 결혼식 주례를 서는 국회의원 보좌관인 인공(안성기 분)을 짝사랑하며 속을 태우지만 말한마디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한다.
서로 방향과 색깔이 다른 춘희와 철수의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시나리오 속에서 서로 티격 태격하며 또다른 사랑의 날개를 단다.
시나리오 속의 주인공은 미술관에서 일하는 다혜와 동물원 수의사로 일하는 인공. 철수는 춘희의 분신이기도 한 시나리오 속의 다혜를 통해 적극적인 사랑을 유도하고 춘희는 무뚝뚝한 시나리오 속의 인공을 다정다감한 인물로 만들어간다.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 형식의 틀을 갖고 있는 「미술관 옆 동물원」은 두 사람이 써내려가는 시나리오의 제목. 정적인 공간인 미술관과 동적인 공간인 동물원이라는 공간적인 대비를 통해 심리적인 갈등구조를 표현하고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과 상상으로 대비되는 두 가지의 사랑이야기는 영화적인 톤을 달리하면서 큰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고 관객들을 설득한다. 다만 대부분 동시 녹음으로 제작되는 최근 영화로는 드물게 후시 녹음 부분이 많았다거나 별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려 했던 최초의 의도가 어정쩡하게 실사 영화로 처리돼 그대로 보여졌다거나 하는 것은 만든 사람들에겐 다소 미흡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관객들에겐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상상속 공간으로 보여지는 데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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