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斗煥 한창그룹 정보통신 총괄부사장
「산업화는 늦었어도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구호 아래 산, 학, 연 뿐만 아니라 관계, 정계 등 여러 분야에서 정보화를 부르짖고 앞장서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분위기와 이에 따른 현상들은 고무적인 것으로 정보통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무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조금 우려가 있다면, 가끔은 이런 것들이 우리가 노력하는 진의와는 관계없이 혹시 구호로만 겉도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모두 정보통신에 열심인데 방법이 제대로 되어 그 노력이 그만큼 빛을 발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우리의 정보통신 관련 일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형식주의로 흘러 그런 형식주의가 정보통신을 마치 무슨 단거리 뜀박질처럼 여기게 만드는 경향 탓이다. 그런 형식주의의 예를 들자면 △언론의 최초, 최고라는 선정적 발표주의 △최초, 최고라는 표현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듯이 여기는 철부지주의 △정치와 관료사회의 뭔가 빨리 보여주겠다는 전시적 이벤트주의 △그리고 여기에 편승하는 정보통신 관계자들의 세태주의 등이 있으며, 이런 것들은 어느 새 우리 정보통신 분야의 다반사가 되어 있다.
이런 형식주의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는 이들 모두 정보통신은 장기적으로 많은 위험을 거치고 각고의 노력을 통해야 간신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뒤로 한 채, 정보통신을 마치 앞에 장애물이 없는, 선이 곧게 그어진, 평탄한, 그것도 짧은 트랙을 달리는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속성 때문이다. 이런 형식주의에 따르게 되면 정보통신은 그냥 내달음치기만 하면 되는 뜀박질이다.
그래서 조금 먼저 출발한 기색이면 최초, 최고로 떠벌려지고, 또 그 시작이 마치 그 끝인 것처럼 치부하며, 외국에서 말 나오기가 무섭게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덩달아 멋모르고 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 뛰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내달음치기만 하면 되는 뜀박질처럼 재원을 갖다 붓는 규모 경쟁을 한다. 그리고는 그 결과와 평가에 대해서는 많은 경우 묵묵부답으로 변변히 아는 사람조차 없다.
가끔씩 벌어지는 이런 형식주의 현상은 우리가 정보통신에 가지는 자긍심 결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뒤떨어져 있다 싶거나 또 잘 모르겠으니 옆에서 하면 평가할 여유없이 그냥 정신없이 따라하고 본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 정보통신의 자긍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그간의 숱한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적어도 제대로 평가할 수는 있으며 그런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의 정보통신을 이끌어야 한다.
정보통신은 결코 단거리 뜀박질이 아니다. 정보통신은 마라톤보다 지루하고 장애물경기보다 위험하며 미로 찾기보다 복잡한 것이다. 어쩌면 아프리카 정글을 횡단하는 자동차경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마라톤에서 한 발 앞서 출발한 것이 먼저 도착하는 것과 별 관계 없고, 장애물경기에서 조금 앞서 성급히 달리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면 아무 소용없으며, 미로 찾기에서 한쪽으로 먼저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정글 횡단경주처럼 어떤 장애가 어떤 시간에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리고 경주자 사이의 술수와 투쟁도 전혀 간단치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보통신은 초기 상당기간의 어렵고 복잡하고 위험한 과정이 진행된 후에는 그때부터 선두주자에게는 평탄한 뜀박질 트랙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최초로 PC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 아니었고 SUN이나 IBM도 처음에 뜀박질부터 해서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최초의 PC업체, 슈퍼컴퓨터 업체, 어레이 컴퓨터업체는 지금은 흔적이 없거나 그렇게 되고 있다. 당연히 예외는 있지만 많은 성공한 기술과 기업은 그 앞에 희생양을 두고 있다. CP/M이 MS-DOS의 희생양이었고 매킨토시 OS가 윈도의 희생양이었다.
성공한 기업과 기술은 떠벌리기보다는 기술추세와 기술분석 그리고 그 시장에 치중하였고,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절한 시간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했다. 우리처럼 제한된 인적, 물적 자원으로 경쟁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내보이기 위한 자존심 만족보다는 사업을 성공시키는 관점에서 정보통신을 보아야 한다. 위험도가 크고 혼란스런 경우에는 처음이 되기보다는 앞선 희생양들의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여 진행하고, 「High Risk High Return」이라지만 위험도 분석과 혼란이 끝날 때쯤 이젠 뜀박질로 앞설 수 있다고 확신이 들 때 온 몸을 날려 뜀박질한다.
물론 그 확신이 때로는 너무 일러서, 때로는 너무 늦어서 실패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멋모르고 남 따라 무작정 달려들어서는 안된다. 준비하고 조심해야 할 때 미리 뜀박질하고, 뜀박질이 필요할 때는 벌써 기진맥진해 제대로 발도 떼지 못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현상들을 벗어나 우리가 차분하게 생각하고 분석하고 판단하지 못하게 몰아가는 발표주의, 철부지주의, 이벤트주의, 세태주의 등의 형식주의를 제대로 된 정보통신의 자긍심으로 물리치고 냉철한 사업적인 관점에서 진행할 때, 우리의 정보통신이 구호와 거품이 아니고 우리가 경주하는 노력과 원하는 기대만큼 우리의 경제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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