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SI업계, 대구공항 관제시스템 수주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

한동안 잠잠했던 시스템통합(SI)업체들의 「진흙탕 싸움」이 재연되고 있다.

최근 현대정보기술(대표 김택호)은 건설교통부가 발주한 대구공항의 한반도 전역 비행관제시스템(ACC) 교체사업에서 삼성SDS(대표 남궁석)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건교부와 감사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대형물량의 수주를 둘러싸고 사업 선정업체와 탈락업체간 벌어지는 이같은 후유증은 흔히 있어왔다. 특히 수주물량이 클수록, 경쟁이 치열할수록 잡음이 증폭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기술력문제가 사안의 초점이라는 점과 해외 기술협력선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종전의 뻘밭싸움과는 다르다.

이번 사건이 업계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바로 이번 수주 프로젝트가 국내 영공을 책임지는 중요한 ACC사업이라는 점과 저가입찰이 문제돼 온 그동안의 쟁점과는 차원이 다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건설교통부가 지난 5일 산하기관인 항공교통관제소가 발주한 총 3백35억원 규모의 대구공항 ACC 교체작업에 응찰한 7개 업체 가운데 삼성SDS-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 1순위로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이에 대해 우선협상 대상자 2순위로 선정된 현대정보기술(HIT)-레이티온(Raytheon) 컨소시엄은 건교부가 삼성컨소시엄을 사실상의 낙찰자로 결정한 것은 입찰가와 기술적 결함 등을 무시한 것이라며 감사원 등에 이의제기하는 등 즉각 반발했다.

현대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해외협력선의 기술력문제. 한반도 항공을 맡겨야 하는 외국 기술협력선이 기술력과 신뢰성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록히드마틴사가 영국공항 프로젝트 수주과정에서 보여준 지연사태를 공개했다. 현대는 외신을 인용해 삼성의 제휴사인 록히드마틴사는 미국내 입지확보에 실패한 뒤 영국 항로관제시스템 설비사업에 참여했으나 작년 말인 납기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등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록히드의 프로젝트 구축이 다소 지연된것은 사실이나 이는 관제사들의 사양요구가 자주 변경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동안 구축지연에 따른 벌금(페널티)을 한번도 물지 않은 것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읽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또하나의 대목은 당사자격인 현대와 삼성의 태도. 감사원의 조사로 문제가 확산되자 오히려 이들 업체는 이번 사안이 증폭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IMF 경제체제에 들어가는 마당에 마치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협력은 고사하고 진흙탕 싸움만 벌이는 것으로 비칠까 크게 우려해서다.

그러나 이들 국내업체 해외협력선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사생결단」식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관계기관과 언론에 증폭시킨 배후도 협력업체들이었다는 후문이다. 이들 해외기술협력선은 이번 한국의 수주확보 여하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 선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 아래 이같은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IMF체제 아래에서 다시 한번 설움을 느끼게 하는 해외협력업체의 대리전 성격이 짙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SI업계의 고질병이었던 저가입찰의 쟁점에서 벗어나 기술력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 감사원의 결과와 건교부의 앞으로의 행동에 귀추가 모아지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김경묵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