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89)

날이 밝았다.

말간 태양이 서울 한복판 종로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흔적. 맨홀 화재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길 한복으로 길게 길게 케이블 드럼이 늘어서 있었고, 맨홀 속에 괸 물을 퍼내는 양수기가 군데군데서 돌아가고 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심재학 대장이 건네주는 방화복과 산소통을 무겁게 짊어졌다.

『김 대리, 고생 많았지?』 김지호 실장은 가까이에서 자신의 차림을 도와주고 있는 김 대리를 향해 말을 건넸다.

『날씨도 싸늘한데 잠 한숨 못 자고 밤을 새워버렸으니.』 『아닙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이곳에 계신분들 다 밤새우셨는데요. 실장님께서도 고생하셨지요. 그 많은 회선 다 수동으로 절체 했다면서요.』 『그래, 이번 사고가 매우 복합적이어서 혼란스러웠지.

복구 준비에는 차질 없겠지?』 『네, 장비와 인력 모두 준비 완료되어 있습니다. 현장검증만 끝나면 바로 시작 될 것입니다. 본사에서도 다들 오셔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 나를 찾던 분이 있었다면서?』 『네, 제가 직접 만나 보았습니다. 진기홍 할아버지라고 하시며 실장님이 이곳에 언제 나오시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진기홍 할아버지?』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물으시기에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들어가셨지?』 『네 들어가셨습니다. 실장님 나오시면 연락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네. 현장검증을 끝내고 연락 드리겠네.』 김지호 실장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광화문 네거리. 출근하는 사람들이 화재와는 아랑곳없이 바쁜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김 실장님, 준비 다 되었습니까?』 심재학 구조대장이었다. 소방서의 진압대장도 함께였다.

『네, 준비되었습니다.』 맨홀. 김지호 실장은 동그란 맨홀 속을 들여다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훅훅 얼굴을 뜨겁게 했다. 어깨에 멘 장비의 무거움이 더욱 무겁게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었다.

냄새. 코가 매울 정도의 메케한 냄새. 현기증 났다. 김지호 실장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양. 변함없는 태양이 눈부시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심재학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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