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78)

자물쇠.

승민은 지하도 출구를 빠져나와 황금당 셔터 아래로 채워진 자물쇠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충분히 검토된 사항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해본 일이 아니다. 즉흥적인 것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맨홀을 견학할 때 들었던 것처럼 화재로 인한 통신망 장애에 대한 복구도 곧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조건성립, 오늘 밤이 조건성립의 유일한 시간이다.

승민은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황금당이 입주해 있는 건물 뒤쪽으로 돌아섰다. 골목길. 충분히 어두웠다. 하지만 귀중품을 취급하는 점포답게 창마다 보안창살이 두텁게 설치되어 있었다. 창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들었을 때 창문 안쪽 양편에서 깜박거리는 붉은 빛의 램프가 보였다. 감지기였다. 감지기가 살아있다는 표시였다.

다른 창문의 감지기를 살폈다. 여전히 붉은 빛으로 빠르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인경비시스템의 감시라인이 오프라인이 아니란 말인가? 바로 앞에서 발생한 맨홀의 화재에도 이곳 황금당 무인경비시스템이 오프라인 상태로 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승민은 감지기 불빛을 한번 더 확인한 후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오프라인을 확인해야 하는가.

꾸르릉거리며 땅이 울렸다. 전철이 지나치고 있는 것이었다.

『전기통신은 매우 복잡한 다단계의 장치를 거쳐 통화가 이루어집니다. 교환시설, 전송시설, 선로시설 등을 거쳐 하나의 통신이 수행됩니다. 때문에 고장요소도 그만큼 많고, 그 중에 한곳만 고장이 발생해도 원활한 통신이 수행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전화만 하더라도 수천 개의 회로를 거쳐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그 중에 단 한 곳에라도 흠이 있으면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용자는 쉽게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러대지만, 언제 수화기를 들지 모르는 가입자 한사람 한사람을 늘 감지하고 있는 교환기를 거쳐야 하고, 상대방 전화번호를 인식하여 상대 전화국까지 연결하는 전송시설과 선로시설을 거쳐야 합니다. 호출신호를 보내고 응답하는 즉시 상호간을 연결해주는 장치도 거쳐야 합니다. 이러한 사항은 무인경비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감지기에서 감지한 경보를 가공하여 경비회사에 전송하는 과정에서 단 한곳에 장애가 발생해도 시스템은 오프라인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프라인.

승민은 어떻게 오프라인을 확인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모자를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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