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업계, 새판짜기 "M&A 열풍"

미국 반도체업계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들어 주요 반도체업체들의 사업재편과 기업매수, 합병(M&A) 바람이 거세지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구조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반도체업계는 올해 말과 내년 초를 기점으로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주요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에는 두가지 뚜렷한 목적이 있다. 하나는 현저한 채산성 악화를 보이는 부문을 정리해 고부가가치제품 부문에 집중 투자하기 위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대용량 D램과 로직회로 등을 원칩화하는 시스템 LSI개발의 본격화를 위해 종합반도체업체로의 변신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는 방위산업 관련 부문은 미 레이세온社, 노트북 PC 관련부문은 대만 에이서그룹에 각각 매각하면서 고부가가치부문 사업 강화 방침을 전면에 내세웠다.

TI는 특히 업계 수위를 지키고 있는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DSP) 시장이 지난해 23억달러에서 오는 2천1년 1백20억달러로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 신빙성있게 대두됨에 따라 이 분야 사업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가격하락으로 인한 시황 악화로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D램 분야와 관련해서는 같은 분야 다른업체들과의 개발, 생산을 망라하는 제휴를 통해 투자부담과 위험을 줄여 현 상황을 뛰어넘는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모토롤러의 경우는 D램사업에서의 완전한 철수를 결정했다. 사실 모토롤러의 D램시장 점유율은 2% 미만으로 매우 미미했다. 여기에 가격폭락에 의한 수익악화가 겹치면서 이 사업의 포기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모토롤러는 D램사업 포기 발표와 동시에 조직개혁과 이를 주축으로 하는 반도체사업의 재편을 단행, 다양한 제품군을 이용한 용도별 종합 솔루션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M&A를 통한 시스템 LSI사업 강화도 미 반도체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미 반도체업계에서 단행되고 있는 M&A는 타사 기술 매입을 통한 다기능 칩의 조기 개발과 시장 선점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문에 자사 독자기술을 가진 업체들 간의 기술 제휴 움직임도 같은 목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내셔널 세미컨덕터(NS)는 시스템 온 칩(SOC) 사업 추진을 전격 표명하면서 요소기술 보유업체를 합병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NS는 SOC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SOC 사업 기반 구축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NS는 지난해 6월 시러스 로직의 파워관리기술개발부문인 「피코 파워」를 매입했으며, 올 3월에는 MPEG 오디오, 비디오 디코터 기술 개발업체인 미디어 마틱스社를 1억달러에 인수했다. 또 7월에는 인텔 호환 마이크로프로세서(MPU) 개발업체인 사이릭스를 5억5천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NS의 이같은 움직임은 네트워크 PC(넷PC), 인터넷접속 전용단말기 등 저가격 가정용 PC와 정보가전용 SOC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를 위해 NS는 지난 6월 메인주 사우스포틀랜드에 약 10억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칩 생산거점을 마련했다. 이 거점의 본격 가동시기는 내년 중반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이릭스와 함께 윈도 호환 MPU로 인텔을 위협하고 있는 AMD도 반도체 관련업체인 넥스젠社를 합병해 차세대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MPU분야 최대업체인 인텔은 노트북 PC용 그래픽 컨드롤러 최대업체인 칩스 앤드 테크놀로지社를 약 4억2천만달러에 매입했다. 인텔은 PC의 가상현실감을 높여주는 비주얼 컴퓨팅을 제창하고 있는데 그래픽처리기술은 그 요소기술의 하나이다.

디스플레이 반도체분야에서도 M&A와 기업제휴는 활발하다. 특히 차세대 휴대전화, 호출기,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 등에 사용되는 초소형 디스플레이를 둘러싼 기술 제휴 움직임은 한층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헬맷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HMD는 올해 들어 그 기술이 급속히 발전해, 내년 이후에는 가전, 오락, 산업, 군사용 등으로 제품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NS는 LCD업체인 쓰리 파이브 시스템즈와 제휴, LCD 실리콘 기술을 채용한 호출기, 휴대전화단말기용 초소형 디스플레이를 개발한다. 양사의 계약기간은 5년으로 이 제휴를 통해 NS는 0.5인치급 SVGA 디스플레이와 SXGA 디스플레이를 생산하고 있다.

또 플래너 시스템즈는 LCD 전문업체인 스탠디시 인더스트리즈를 합병, 새 회사 플래너 스탠디시 인더스트리즈를 설립했다. 플래너 시스템즈는 새 회사를 초소형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모토롤러도 LCD 전문업체인 코빈社와 통신기기, 디지털카메라 등에 사용되는 초소형 휴대형 디스플레이의 개발, 생산에서 포괄적인 제휴 관계를 맺었다. 모토롤러는 제휴를 통해 코빈社의 0.24인치 「사이버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을 도입, 호출기와 휴대단말기에서 전자메일과 인터넷 텍스트, 비디오 정보를 표시하는 저가격, 저소비전력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업계의 이같은 사업 재편과 기업 매수, 합병은 반도체 제품의 기능 다양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개 칩에 여러 가지 기능을 집적하는 시스템 LSI 등의 부각으로 특정 분야에 전력을 기울여 온 미국 반도체업체들의 기존 전략은 이제 그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즉, 변화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의 현상을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앞으로 반도체의 저가격, 고집적, 저소비전력화 추세와 맞물려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게 관련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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